Home > 
-
당신의 반려견은 사료를 먹고 있나요? 식사를 하고 있나요?
철학박사 강신주의 책을 읽다가 식사와 사료의 차이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편의를 위해, 살기 위해 먹는 것은 사료다.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진정한 식사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료를 해치웠나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발치에 퍼져 멀뚱히 나를 바라보는 내 반려묘 연희와 눈이 마주쳤다. 이상 모를 죄책감이 밀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반려동물들이 그저 살기 위해 먹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견의 하루를 살펴보자. 쨍쨍거리는 알람소리, 또는 당신의 반려견의 짖는 소리에 당신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터벅터벅 부엌으로 가 반려견의 밥그릇이 비어 있는 걸 본 당신은 사료 봉다리를 집어든다. 반려견은 ‘바스락’하는 사료 봉지 소리를 듣고 얼른 부엌으로 달려나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10초만에 해치운다. 당신은 출근을 하고 반려견은 현관 앞에 엎드린 채 당신을 기다린다. 8시간 후, 그토록 기다리던 당신이 나타났다. 당신과 반려견은 열렬히 재회의식을 나눈다. 그리고 당신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을 반려견을 위해 다시 사료가 가득 담긴 밥그릇을 바닥에 내려둔다. 반려견은 사료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당신이 TV를 보며 지친 몸을 소파에 누이면 반려견은 다시 침대나 당신의 곁에서 턱을 괴고 누워 잠을 청한다. 물론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반려견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개들 중에 열에 여덟, 아홉은 이와 아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개는 사냥을 하던 동물임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했던가. 인간과 함께 살기 이전, 개들은 이 한 줄의 성경 말씀을 충실히 실천했던 동물이다. 먹이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땅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너른 숲속과 들판을 떠돌고, 사냥감을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사냥감을 쫓고, 피튀기는 사투를 벌였다. 사냥에 성공한 개들이 먹이를 그냥 먹느냐? 그것도 아니다. 강한 이빨로 사냥감을 갈갈이 찢어 뼈까지 으득으득 씹어먹었다. 이러한 사냥 본능은 개가 아무리 우리와 함께 지낸 세월이 길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런데 현대 개들의 식사시간은 어떤가. 개들은 반려인이 주는 사료를 아주 편안하게 앞발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던 개가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하겠는가? 개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신체(발, 꼬리, 생식기 등…) 을 끊임없이 핥고, 깨물기도 하고, 집안의 물건들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것을 먹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 당장 밥그릇을 버려라 만약 개가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는 것을 진정으로 즐기고 행복해한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밥그릇에 밥을 주면 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개는 이런 먹이를 원하지 않는다. 개가 진정으로 원하는 식사는 충분히 냄새 맡고, 먹이를 쫓고, 해체하여 어렵게 먹이를 얻는 것이다. 그러니 밥그릇을 버리자. 밥그릇을 버리면 대체 밥을 어디다 주느냐고? 지금부터 밥그릇 없이 행복한 식사 시간을 만드는 방법 2가지를 소개할테니 이 글을 다 읽은 후에 당신이 할 일은, 엉덩이를 일으켜 부엌으로 가 당장 밥그릇을 버리는 것이다. 스낵볼을 이용하기 스낵볼은 음식을 안에 넣을 수 있는 형태의 장난감을 말한다. 이 스낵볼에 밥을 주게 되면 반려견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냄새도 맡아보고, 이리저리 굴려도 보고, 물어뜯기도 한다. 스낵볼을 이용하면 사료를 10초만에 없애 버렸던 반려견이 15분~20분 정도 즐겁게 식사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스낵볼이 없다면 사료를 조금씩 담아 구긴 종이컵을 여러개 준비하여 집안 곳곳에 숨기는 것도 좋은 식사 시간이 된다. 숨겨진 먹이를 찾기 위해 냄새를 맡으며 집안 곳곳을 탐색하고, 먹이가 담긴 종이컵을 산산히 찢어 갈기는 짜릿한 쾌감까지 느낄 수 있다. 훈련 보상물로 음식을 이용하기 교육과 훈련을 오해하는 보호자들 중에는 “그렇게까지 강아지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견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개는 사람의 약 2세~7세 정도 지능을 가진 아주 똑똑한 동물이다. 이렇게 지능이 높은 동물에게 그 어떤 두뇌 활동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어린 아이를 유치원에도 안보내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으며 어떤 교육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내 미용실에 반려견이 오기 4~5시간 전에는 음식을 주지 않고 오기를 권유한다. 배가 고픈 반려견은 내가 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며 자연스럽게 내 냄새와 미용실 환경, 미용 기구 등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미용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와 반려견이 친해지고 교감하는데도 음식이 아주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식사량 중 절반 정도는 훈련을 통해 보상으로 주도록 하자. 반려견은 자연스럽게 당신을 든든한 리더로 인식하고 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는 것’ 자체 보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 언제부터인가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으로 "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 ‘저녁있는 삶’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도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쫓으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삶’보다는 행복하고 가치있는 삶을 우선시 하는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원한다. 그리고 내 반려동물도 보다 더 행복하게 그들의 삶을 즐겼으면 좋겠다. “밥그릇 없애기”는 반려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의 반려견이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밥그릇을 버리고 사료가 아닌 식사를 제공하자.
-
개는 고요하고 침착한 리더를 원한다.
리더십만 잘 세워도 대부분의 행동문제는 해결된다. 반려인들은 자신의 반려견을 자식처럼 키운다. 그래서 우리는 반려견에게 딸, 아들 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사랑하는 자식이니까 반려견이 하는 모든 행동을 받아준다. 장난감을 물어오면 놀아주고, 산책을 나가자고 문 앞에서 짖으면 산책을 나가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강아지가 뽀뽀 세례를 퍼부으면 입술을 쭈욱 내밀어 ‘우쭈쭈 내 새끼 잘 있었어?’ 하고 기꺼이 무릎을 꿇고 얼굴을 내어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행동은 개에게 '흠... 이 집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구만. 내가 이 집과 가족들을 지켜야겠어.' 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우리가 자식이라고 생각하여 쏟는 애정이 오히려 반려인을 ‘지켜야 할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억지로 등이 떠밀려 무리의 리더가 된 반려견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시시각각 문밖의 침입자를 경계해야 하고(외부인에 대한 공격성, 짖음), 산책을 할 때는 위협적인 것들로부터 반려인과 나를 지켜야 하고(산책 시 공격성, 짖음), 지켜주어야 할 반려인이 외출을 할 때마다 세 살배기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놓고 감옥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분리불안). 뿐만 아니라 리더십의 부재는 꼬리 쫓기, 음식이 아닌 물건 먹기, 물어 뜯기 등 수많은 행동 문제를 일으킨다. 아미시엥 본딩 교육법으로 든든한 리더 되기 아미시엥 본딩(Amichien Bonding - 개를 친구로 바라보며 유대감을 형성해 나가는 교육방법을 뜻한다 : 개가 행복해지는 긍정교육 p. 77) 교육법을 사용하면 강아지에게 소리를 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리더가 될 수 있다.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개들이 무리 내에서 서열을 확인하는 상황을 이용하여 그 순간마다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개가 서열을 확인하는 상황은 크게 4가지다. 다시 만났을 때, 위협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사냥을 나갈 때, 먹이를 먹을 때. 이 네 상황에서 아미시엥 본딩 교육을 반복하면 개는 가족과 집을 돌보는 책임이 자신이 아닌 반려인에게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아미시엥 본딩 교육 첫번 째, 재회할 때 5분 무시하기 (재회)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순간, 개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서열을 확인한다. (재회 의식) 짖거나, 핥거나, 발바닥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처럼 폴짝폴짝 뛰어오르기도 한다. 상처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반려견이 당신에게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반가워서라기 보다 재회 의식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 적어도 5분은 개를 무시하자. 설령 개가 공중부양을 하더라도 무시해야 한다. 어렵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내 할 일을 하면 5분은 금방이다. 반려견이 재회 의식을 포기하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리와~"하고 부른 뒤 예뻐해주고 칭찬해준다. 부르지 않았는데 달려와서 안아달라고 조르면 그 어떤 말도 하지 말고 가볍게 밀어낸다. 아미시엥 교육 두번 째, 손님이 왔을 때 (위협) 침입자로부터 무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반려견은 초인종이 울리면 미친듯이 짖으며 달려나가 난리법석을 피운다. 위협으로부터 무리를 지켜야 하는건 무리의 리더로서 당연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때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바깥에서 한 사람이 초인종을 누른다. 강아지가 짖기 시작하면 가볍게 칭찬을 해주고, 반려견과 함께 문으로 걸어간다. 그 다음 손님 역할을 맡은 사람은 현관문이 열리면 개를 쓰다듬거나 아는척 하지 않고 무시한다. 계속해서 짖고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반려견과 방으로 들어가 잠시 함께 있다가 나온다. 반려견이 조용해지면 다시 거실로 데려온다. 만약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면, 초인종 소리를 녹음하여 강아지에게 들려준다. '띵-동' 개가 짖기 시작하면 반려인은 일단 개에게 가볍게 고맙다고 표현하고 현관문을 열어 밖을 확인한다. 밖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 시킨 후 다시 문을 닫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려견이 침입자가 왔음을 알렸을 때, 함께 바깥을 확인해주고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침입자를 확인하고, 무리로 침입자를 들일지 말지는 리더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미시엥 본딩 교육 세번 째, 산책과 놀이를 할 때 (사냥) 산책은 ‘사냥’과 비슷한 맥락이다. 개의 무리에서는 리더가 사냥을 주도한다. 따라서 반려인이 산책의 주도권을 가져오면 반려견은 자연스럽게 반려인을 리더로 인식한다. 산책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면, 산책을 나갈지 말지부터 방향과 시간까지 전부 반려인이 결정해야 한다. 아마 산책을 가기 직전 문앞에 선 반려견은 땅! 소리가 나면 번개처럼 튀어나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출발선에 엎드린 육상선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연다. 달려나가려고 하면 다시 문을 닫는다. 이것을 반복하면 반려견은 문 앞에 얌전히 앉아 기다리게 되는데, 이 때 반려인이 먼저 문밖으로 반려견을 인도하는 것이다. 놀이도 마찬가지다. 장난감을 먼저 물고와서 '어서 던지거라'라고 하는 반려견의 요구에 응해선 안된다. 장난감은 강아지가 꺼낼 수 없는 곳에 두고 반려인이 놀이의 시작과 끝을 결정한다. 만약 강아지가 장난감을 물고 왔다면, 바로 놀아주지 말고 '앉아' 나 '엎드려'등의 요청을 한 후 보상으로 장난감을 던져준다. 이렇게 하면 반려견이 내가 놀자고 해서 노는 것이 아니라, ‘반려인의 요청에 응했기 때문에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미시엥 본딩 교육 네번 째, 먹이를 먹을 때 (음식) 개의 무리에서 가장 서열이 잘 드러나는 때는 먹이를 먹는 시간이다. 리더가 배불리 먹은 다음, 다른 구성원들도 서열에 따라 식사를 한다. 이를 적용하여 반려견에게 음식을 줄 때, 작은 비스켓이나 사탕 등을 준비해서 먹는 시늉(gesture eating)을 한 후 과자를 다 먹은 후 밥그릇을 내려두는 것인데, 사실 이 교육방법을 보호자님들께 알려드리면 다들 실천하기를 어려워 하신다. 그래서 나는 밥그릇을 내려 놓기 전에 적어도 "앉아" , "기다려", "엎드려" 등 3가지 이상의 요청을 하라고 한다. 반려견이 요청에 응하면 칭찬과 함께 보상으로 밥을 준다.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내가 읽었던 리더십과 관련된 책 중 가장 진한 여운을 남겼던 책의 제목이다. '사람을 강제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팔로워들 스스로가 잘발적으로 따르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다.'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우리가 반려견에게 보여주어야 할 리더십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십이나 서열은 강아지의 배를 드러내도록 뒤집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권위를 보여주겠답시고 윽박을 지르거나, 매를 때린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려견을 더욱 예민한 개로 만들 뿐, 절대 반려견이 스스로 따르는 리더가 될 수 없다. 개는 고요하고 침착한 리더를 원한다.
-
[이선필의 세계 애견문화 산책] 고대 중국 편 1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치 당시 중국 올림픽유치위원회는 경쟁 도시인 파리에 대형 들개가 너무 많이 돌아다녀 위험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식견문화를 가지고 있고 동물복지에 대해서 여전히 관심을 두지 않는 중국이 애견문화의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프랑스를 상대로 이러한 전략을 펼쳤다는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중국은 결국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했다.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었던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1억 마리 이상의 반려견을 가진 중국은 실제로 강력한 법을 통해 비교적 안정된 반려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1가구 당 1견 원칙을 규정하고, 대도시에서는 35㎝ 이하의 소형견들만 소유할 수 있으며, 강력한 등록제를 통해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한 때는 십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차우차우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지금도 세계에서 품종이 우수한 비싼 개들은 거의 중국인들이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반려견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동물학대 방지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고 매년 1천만 마리 이상이 음식으로 소비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국 신화 속의 개 사실 중국은 하나의 애견문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라이다. 56개나 되는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단일한 애견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민족은 개를 숭배하는 반면, 어떤 민족은 여전히 개고기를 즐기며 대대적으로 축제까지 열고 있다. 심지어는 개를 자신들의 선조로 생각하는 민족도 있다. 스스로 곰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야오족과 서족이 그렇다. 그들이 숭배하는 개는 신화 속의 왕 제곡고신씨의 반려견 판허(Panhu)다. 제곡고신씨는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공을 세운 자에게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했다. 이에 판허가 나서 적의 장수를 물어 죽여 머리를 가져다 바쳐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결국 공주와 결혼해 남쪽 산악지역으로 내려가 대대로 번성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전설을 믿는 야오족과 서족은 판허를 자신들의 왕으로 숭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판허 신화가 묘족과 리족에서는 조금 변형되어 나타난다. 왕이 개를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기를 주저하자 판허가 종 속에 들어가 280일이 지나면 사람이 된다고 말하고 종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왕은 참지 못하고 279일 째에 종을 열어봤기 때문에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몸통만 사람인 반인반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이들 지역에서는 당연히 개의 학대나 개고기가 금지되고 있다. ▲ 판허신화 그림 또 다른 신화는 개가 인간에게 곡물의 씨앗을 전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쓰촨성의 티벳족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곡물은 매우 크고 잎이 풍성했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용변을 본 후 그 잎을 위생용으로 사용했는데, 이를 본 하늘의 신이 화가 나서 곡물의 씨를 모두 회수해 가려 했다. 이 때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울면서 간청했다. 이에 감동한 신은 곡물의 씨앗 몇 개를 남겨주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주식인 곡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는 티벳족 뿐만 아니라 부이족, 거라우족, 하니족, 수이족, 좡족 등이 믿고 있다. 한편 묘족은 원래 개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곡물을 훔치다가 간수에게 걸려 싸우다가 여덟 개의 꼬리를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 남은 꼬리에 씨앗 감추어 지상의 인간들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좡족과 거라우족은 곡물의 머리 부분이 개의 꼬리처럼 구부러져 있고 털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개에게 곡물을 빚지고 있으니 이 신화를 믿는 민족들은 추수를 하면 꼭 개에게 음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개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은 많다. 손오공의 다리를 물어 이랑신이 손오공을 생포하도록 공을 세운 이랑신의 반려견 이야기도 있다.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사자성어가 여기서 생긴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하늘의 개 천구(天拘)이야기도 있다. 하늘에 사는 검은 개 천구가 배가 고파 해와 달을 삼켜버려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 북을 울려 개를 놀라게 해 해와 달을 뱉어내도록 해야 일식과 월식이 사라진다고 한다. 과학적 설명이 없던 시대에 일식이나 월식은 사람들에게 분명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개와 연결시킨 것이다. 중국 신화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물들은 대부분 용, 해태, 봉황과 같은 상상 속의 동물이거나 여러 동물이 결합된 기괴한 모습의 동물이다. 그런데 개는 신화 속에서 거의 대부분 현실의 온전한 동물로서 등장한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가축으로서 오래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이 가장 잘 아는 동물이기에 개를 상상의 동물로 그리거나 날개가 달린다거나 하는 모습으로 그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다른 지역 신화 속의 개들은 대부분 이름을 가지는데 반해 중국 신화 속에 등장하는 개는 판허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고유한 이름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구처럼 그저 하늘의 개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개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물론 앞에서 말한 소수민족의 경우는 예외이다. 사실 중국 신화에서는 그리스나 이집트와 같이 개가 사후세계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신이라거나 하는 개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를 신비한 동물로 묘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개고기 윤리학 개고기의 윤리적 문제는 오늘날의 중국에서도 논쟁거리이다. 하긴 아무리 경제가 발달하고 애견인구가 늘어도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진 개고기 섭취 문화가 한 순간에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도 개고기 섭취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개를 포유동물의 조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포유동물을 의미하는 거의 모든 한자에는 犬의 변형인 개사슴록변(犭)이 들어있다. 예를 들어 여우 호(狐), 이리 랑(狼), 사자 예(猊고)처럼 형태상 유사한 동물뿐만 아니라 고양이 묘(猫), 원숭이 유(猶), 돼지 저(猪)처럼 전혀 상관없는 동물들의 한자에도 개사슴록변을 쓰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개가 최초의 가축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알아가는 동물들의 명칭을 만드는데 개를 의미하는 개사슴록변을 붙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 개는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포유동물의 하나일 뿐이었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개를 음식 재료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포유동물의 하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먹을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개는 사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했다. 개는 신이 내려준 선물로서 존중받았지만 특정한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목적의 첫째는 인간에게 음식을 제공해 인간이 생존하는데 돕는 것이고, 둘째로는 제물로서 희생되어 인간의 제례의식에 기여하는 것이다. 첫 번째 목적에서 개는 먹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주었다. 중국에서 개고기 섭취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136년 국교가 된 유교도 개의 식용을 금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먹는 개와 다른 용도의 개를 구분함으로써 개고기 섭취를 정당화했다고 할 수 있다. 개고기 섭취가 유교의 윤리학과 결코 대립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 역시 개를 길렀는데, 개고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신 예기 4장에서 자신의 개가 죽었을 때 머리가 흙에 닿지 않도록 거적으로 싸서 묻으라고 하여 죽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리만을 언급하였다. 유교의 경전 중 하나인 주례는 개를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각각은 사냥견(tianquan-田犬), 경비견(feiquan-吠犬), 음식의 재료가 되는 개(shiquan-食犬)이다. 이러한 논리는 ‘여전히’ 개고기를 섭취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주나라 시대의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개의 역할에 따라 개를 구분해 놓았는데, 집과 재산을 지키는 개(shougou-守狗), 사냥개(liegou 獵狗), 경주용 개(zougou-走狗), 애견이나 반려동물로서의 개(xugou-畜狗)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식용으로서의 개에 대해서는 따고 구분해 놓지 않았다. 이는 개가 원래 먹기 위해서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고대 중국의 개 모양 도자기 어쨌든 개고기는 고대 중국에서 대중적으로 소비되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바비큐 형태로 먹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개고기는 중국어로 개고기 연(肰)인데, 태우다 혹은 굽는다는 한자는 불 화(灬) 위에 개고기 연을 올려놓은 불탈 연(然 )이기 때문이다. 후에 제사에서 사용할 탕에 개고기를 사용하면서 이른바 ‘보신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봉건영주들의 식탁에는 종종 개고기를 이용한 탕과 밥이 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개고기가 대중적이었지만 구도((狗屠)라고 부른 이른바 개백정은 신분이 매우 낮은 직업이었다. 위진남북조시대 정치가인 범엽은 그들은 게으로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했다. 개고기는 신분을 불문하고 제사 등의 행사를 하고 식사로 즐겼을 만큼 대중적이었다. 당연히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으로도 사용되었다. 개의 기름으로 튀긴 물고기를 먹으면 여름에 열을 낮춰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황제는 주로 가을에 개고기를 먹었는데, 이는 피로를 줄여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에 출판된 중국의 역사서 국어에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왕이 징집할 인구를 늘리기 위해 남자아이를 낳는 가족에게는 두 항아리의 술과 산모에게 먹일 개 한 마리를 출산 장려금으로 주었다. 대신 여자아이를 낳은 가족에게는 두 항아리의 술과 돼지를 주었다. 이렇게 개고기 중국인들이 ‘죽고 못사는’ 돼지고기보다 고급 음식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송나라 시대 귀족의 연회 /사진=public domain 하지만 이러한 관습은 기원후 1세기 경 불교의 도입과 4세기경 도교의 확장 이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불교는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살생과 육식을 금한다. 도교 역시 자연친화적인 교훈을 가지고 있다. 도교는 유교와는 달리 제례 등을 고집하기 않기 때문에 제사에서 사용되기 위한 개의 도축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또한 도교는 윤회와 같은 사후세계관을 가지지 않았고 윤리학 역시 “자비로움慈, 검소함儉, 겸손함不敢為天下先”을 강조하기 때문에 개의 학대와 같은 문제에 단호했다고 할 수 있다. 6세기~7세기 정도에 와서는 중국에서 일부 민족을 제외하고는 상층계급에서부터 개고기 섭취는 금기시되었다. 1644년 청나라가 들어서고부터는 아예 개를 죽이거나 먹거나 개 가죽으로 옷을 만드는 일까지 금지시켰다. 이것은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와 개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누리하치가 명나라 군대의 추격을 받고 화살을 맞아 초원 위에 누워있을 때 명나라 군대는 초원을 불태워버렸다. 이에 개 한 마리가 주변의 호수에 뛰어들어 물을 자신의 몸에 묻혀 주변의 풀들을 적셔 누르하치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러니 어떻게 개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또 다른 개들의 희생 고대 중국에서 음식을 위한 개들의 희생과는 별개로 또 다른 형태의 희생도 많이 존재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중국인들은 개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개의 피를 신성하게 여겼고, 종종 맹약식 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제사를 위한 제물로 상용된 것은 물론 각종 액운을 쫓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되곤 했다. 기원전 1600~1046년 상나라(은나라)의 수도였던 안양 주변에서 발굴된 무덤들에서는 수많은 인간의 유골과 함께 제물로 희생된 개들이 함께 발굴되었다. 거의 모든 무덤에서 개의 유골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장례 의식에서 개의 매장이 일상적이었던 같다. 유적지에서는 825명의 사람 유골과 함께 말 10마리, 황소 10마리, 양 18마리. 개 35마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개들은 통상 갈대 매트로 싸이거나 나전칠기 관에 묻혀 있었고, 때때로 추가 달린 작은 종이 개의 목에 매어 있었다. 목에 종이 매여 있었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반려견으로 키우던 개였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세후세계를 동행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 한나라 후기 개 모양 진흙상 / 사진=public domain 또한 개는 질병이나 액운을 막아주는 동물로 여겨졌다. 따라서 사람들은 집을 짓거나 성곽을 축조할 때 근처에 개를 묻곤 했다. 또한 상나라 시대의 갑골에서는 태풍과 같은 강한 바람을 멈추게 하기 위해 개를 죽여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적혀있다. 주례에서도 전염병을 쫒기 위해 개를 조각내서 성문밖에 묻거나, 귀신을 쫓기 위해 황제가 옥으로 된 마차를 타고 바퀴로 개를 밟고 지나가는 의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지방 관리들은 이 의식을 위해 얼룩이 없는 개를 공급해야 했다. 이러한 풍습은 기원전 5세기 경을 기준으로 점차 밀짚으로 만든 개 형상으로 대체되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나온 것으로 보아 점차 퍼져나간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집 앞에 짚으로 만든 개 모형이나 형상을 세워두곤 했는데, 이는 재난에 대비해 마당에 개 혹은 짚으로 만든 개를 묻었던 관습에서 유래한다. 어쨌든 죽은 사람과 함께 동물을 묻는 행위는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기원전 200년을 전후로 점차 흙으로 만들어진 조형물로 대체되었다. 중국 북부 지역에서는 사악한 영혼을 쫓기 위해 액막이로 종이를 잘라 개 모양을 만들어 이것을 5월 5일 단오절에 강에 띄워 보내는데, 이것 또한 액막이 행사의 일환이다. (2편에 계속) 글 / 이선필 정치학박사 한국외대 강사 뷰티독스일산애견학원 대표
-
[이선필의 세계 애견문화 산책] 유럽 중세시대의 애견, 애묘 문화
얼마 전 네덜란드 서부 라인강 하류에 위치한 Oegstgeest 지역에서는 세 마리의 개와 말이 묻힌 무덤이 발굴되었다. 8세기 경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에서 발굴된 뼈의 상태와 DNA를 분석한 결과 이 개들은 나이가 들어서 죽었으며, 살아있을 때 학대받은 흔적이 없고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인간의 무덤 근처에 위치한 이 무덤은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분석은 중세시대에 개들이 어떻게 대우받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 Oegstgeest 지역 무덤에서 출토된 개의 유골 개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던 로마시대에 비하면, 중세 초기(5-8세기)는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사회적 변화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사람들이 숲과 농촌으로 흩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축소됨에 따라 도시의 귀족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로마시대의 다양한 애견문화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4세기 초 기독교의 국교화로 동물, 특히 개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제국 시대에 개는 종종 신과 함께 등장해 신의 충성스러운 보호자로 등장하는 모습이 발견되는데, 기독교가 국교화된 이후에는 이와 같은 이교도적인 관습이나 미신행위가 적대시 되는 것은 당연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개는 이기적이며 청결하지 못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개는 보호받지 못하는 동물이었을 것이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에 대해서는 구약성경 바루크서 6장 21절(... 그들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에 단 한차례만 언급되어 있다. 이렇듯 기독교의 개와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중세시대에 개나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수 없었다. ▲ 귀부인의 사냥개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개와 고양이는 중세시대에도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었음이 분명하다. 8세기 유럽이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점차적인 도시화가 진행되면서부터 개와 고양이 역시 증가했고 인간생활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특히 개는 사냥이나 애완견으로서 인간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고양이 역시 집 안에서 길렀지만 이는 오로지 쥐를 잡기 위한 용도로 사육되면서 개와 인간 사이의 감정적인 연결을 가지지는 못했다. 따라서 중세시대 개에게는 개별적으로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고양이는 모두 공통적으로 쥐를 잡는다는 의미를 가진 Musio라고 부르곤 했다. 또한 고양이는 쥐를 주식으로 하는 동물이라는 인식 때문에 밥을 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흑사병(페스트)을 옮기는 쥐를 잡아주는 이로운 동물이었기에 귀하게 대우했던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중세 아일랜드 법에 따르면 고양이 한 마리는 소 세 마리와 동등했다. 독일의 작소니 지역에서는 다 큰 고양이를 죽이면 곡물 60포대를 변상해야 했다. 곡물을 먹어치우는 쥐를 잡는 고양이의 역할을 중하게 여긴 것이다. 고양이는 또한 수녀원과 수도원에 허용된 유일한 동물이었다. 이는 고양이들이 수녀의 마음을 빼앗지 않는 유일한 동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또한 쥐로부터 성체를 보호해주는 것으로 생각되어 성당 출입도 보장되었다. 오늘날에도 영국의 엑서터 교회의 북쪽 수랑에는 고양이가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남아있다. ▲ 고양이의 마녀화 하지만 이러한 고양이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중세시대 고양이들은 종종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1232-3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검은고양이를 악마의 화신과 동일시하고, 사탄은 반은 고양이 반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검은색은 특히나 이교도적 색으로 연결되었다. 로마 신화에서 검은색은 풍장의 여신인 케레스의 망토와 연계된 신성한 색이었으나, 중세에 와서는 악마의 색이 된 것이다. 이러한 검은 고양이에 대한 악마화는 아마도 당시 유럽이 벌이고 있던 이슬람과의 전쟁인 십자군 전쟁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이슬람인들이 즐겨 입는 옷이 검은색이었고, 고양이는 이집트가 원산지이니 말이다. 검은 고양이를 보면 발길을 돌리는 오늘날의 풍습은 이 시기부터 유래한 것이다. 14세기 초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인 Arnold of Liege는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노는 것으로 묘사하곤 했다. 특히 중세 말기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페스트)이 유행하자 고양이들은 대대적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었다. 쥐를 잡는 동물로서 식량을 지켜주고 전염병을 예방해 준다고 믿었던 고양이가 흑사병이 유행해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오히려 마녀의 대리인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세기 초까지 수백만 마리의 고양이들, 특히 검은고양이들이 산채로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이후 유럽에 순수 혈통의 검은 고양이는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대대적으로 고양이가 희생된 이후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더 유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우둔함과 집단적 히스테리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개도 역시 종종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중세 초기 숲으로 숨어들어 떠돌던 개들은 광견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5세기부터 유행해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사라지게 만든 흑사병은 개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화형에 처하는 일이 빈번했다. 중세시대의 개는 투견이나 곰 혹은 황소와의 싸움에서 희생되기도 하였다. 중세시대에 투견은 매우 인기있는 오락이었는데, 이후에는 점차 황소나 곰 등 개보다 훨씬 크고 사나운 동물들과의 싸움으로 변화되어갔다. 19세기까지 전 유럽에 걸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투견에 이용된 개들은 주로 사나운 마스티프 견종들이었다. ▲ 황소와의 싸움 이러한 개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중세시대의 개들은 일반적으로 잘 대우받았다. 이는 개의 활용성이 여전히 컸고 개가 주는 이미지, 즉 주인에게 충실하고 헌신적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중세시대의 그림에는 개가 등장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이러한 그림들 속에서 개는 의인화된 정절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다. 특히 부부의 초상화에서는 신부의 무릎 위에 앉아 있거나 발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개는 통상적으로 신랑이 신부에게 선물한 것으로 신부의 남편에 대한 정절을 의미하거나, 과부의 경우에는 죽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말하기도 한다. 혹은 아기를 갖기를 원하는 부부의 희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당시의 초상화 그림을 보면 몇 가지 상징적(은유적)인 물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들은 부의 상징인 과일이나 부부간의 정절의 상징인 개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이는 한국화나 민화에서 기러기를 정절의 상징으로 등장시키고 원앙을 부부간의 금술로 등장시키며, 복숭아를 다산의 상징으로 그려넣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 얀 반 에이크의 결혼식 사진 개가 상징하는 긍정적 이미지 때문에 개는 종종 가문의 문장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중세 말과 르네상스 시기 많은 귀족가문들은 개를 가문의 문장이나 방패휘장에 그려 넣었다. 이것은 용기, 의리, 충성, 경계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존까지 방패휘장이나 문장에는 사자나 독수리와 같은 용맹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방패휘장에 개를 등장시키는 것은 개의 용맹성과 주인에 대한 충성심 혹은 주인의 보호와 같은 의미를 높이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중세시대 개는 귀족들의 동물이었다는 점도 문장에 개를 사용하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중세시대에 사냥은 귀족들의 독점적인 스포츠였고, 궁정 에티켓의 일부였다. 어떤 사람이 사냥개와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을 의미한다. 여러 독일 가문과 영국 가문들에서는 오늘날 비글의 원조일 것으로 추정되는 탈보트 독을 문장으로 사용했다. Talbot라는 용어는 훌륭한 사냥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냥이라는 것은 스포츠이기도 했지만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개의 용맹성은 전쟁에서도 군견으로 자주 사용하게 하는데 기여했다. 덴마크의 바이킹들은 전투에 나설 때 거대한 개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9세기경의 어느 수도사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한다. “신이시여 바이킹과 그들의 무서운 개로부터 저희를 보호해 주소서.” 이 개는 400여 년 전 독일에서 개량되어 탄생한 그레이트 데인(Great Dane)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덴마크 개’라는 원어명은 아마도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 튜더 가문의 방패휘장 중세시대에 개의 활용이 가장 두드러졌던 분야는 아마도 사냥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사냥이 매우 대중적 여가활동이자 다양한 음식재료를 얻기 위한 행위였다. 사람들은 채소보다 고기를 즐겼는데, 이는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가 줄어 농민들도 고기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귀족들은 농민들이 먹었던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아니라 사냥을 통해 얻은 산토끼나 멧돼지를 먹는 것을 신분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한다. 사냥이 대중적이었다고 해도 귀족보다 고귀한 신분이었던 성직자들은 사냥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인과 농민들 역시 당연히 사냥이 금지되었다. 트렌트공의회 이후에는 사냥을 무조건 금지한 것이 아니라 삼가라고만 적고 있지만 성직자들은 여전히 사냥을 즐겨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직자가 등장하는 그림에서는 사냥개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귀족들이나 부자들은 자신들의 사냥개를 관리하는 하인을 따로 두기도 할 정도로 사냥개 관리에 공을 들였다. 13세기 말 프랑스의 Gaston Phébus는 ‘사냥 문집(Livre de Chasse)’을 출판해 각 사냥개의 견종별 특징과 돌보는 방법을 서술하였다. 이 책은 몇 년 후 영어로 번역되어 The Master of Gam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면서 사냥개에 대한 정보의 확산에 기여했다. 사냥개로는 특히 그레이하운드가 대중적이었는데, Gaston에 따르면 이 개는 집 안에서는 복종적이고 온순하지만, 사냥터에서는 겁이 없고 무자비한 덕성을 지녔다고 한다. 그는 또한 이 책에서 사냥개를 위한 켄넬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고, 평소 사냥견은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한 설명은 사냥개가 단순히 사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애정의 대상이었음을 의미한다. ▲ Gaston의 사냥문집 중 개를 돌보는 방법 16세기 정도부터 애완동물(pet)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훨씬 이전부터 애완견이라는 의미의 개 사육이 유행했던 것 같다. 언어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에 어떤 현상이 유행하면 새로운 용어가 탄생하기 마련이다. 사실 중세 후반기에 이르면 개를 키우는 행위는 귀족들뿐만 아니라 도시의 부유한 사람들 혹은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개는 물건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이었고,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다. 특히 사냥개와 부유한 여인네들의 전유물이었던 애완견이 유행이었다. 10세기 이후 도시의 상인들이 부를 축적해 귀족들의 문화를 모방하면서 애견문화가 확산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3세기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Albertus Magnus는 ‘동물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개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중세 후반기 개를 키우는 행위가 커다란 유행이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당시의 많은 저작들은 사람들이 동물을 기르는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이는 너무나 경박한 일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야할 음식의 낭비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Holinshead Chronicle이라는 사람은 귀부인들이 개를 가지고 노는 것은 멍청한 짓이며, 보다 고귀한 활동을 위한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회 기록에 따르면 수도사와 수녀들은 개나 고양이, 새 등을 길렀다고 한다. 성직자들이 개를 기르게 되면 하나님에 헌신하는 것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개를 기르는 것을 금지했던 교회는 이후 이를 완전히 금지할 수 없어 너무 많이 기르지 말고 교회 내에서 기르지만 않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수녀 지침서에 따르면 고양이를 제외한 어떤 동물도 길러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 있다. 꼭 길러야 한다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러한 비판과 경고는 무시되었다. 당시 랩독을 기르는 것은 점점 유행이 되었고 지배적인 문화가 되었다. 귀부인들은 스파니엘이나 털이 많은 작은 개들을 데리고 다녔다 ▲ 수녀와 반려견 글 / 이선필 정치학박사 한국외대 강사 뷰티독스일산애견학원 대표
-
-
당신의 반려견은 사료를 먹고 있나요? 식사를 하고 있나요?
- 철학박사 강신주의 책을 읽다가 식사와 사료의 차이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편의를 위해, 살기 위해 먹는 것은 사료다.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진정한 식사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료를 해치웠나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발치에 퍼져 멀뚱히 나를 바라보는 내 반려묘 연희와 눈이 마주쳤다. 이상 모를 죄책감이 밀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반려동물들이 그저 살기 위해 먹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견의 하루를 살펴보자. 쨍쨍거리는 알람소리, 또는 당신의 반려견의 짖는 소리에 당신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터벅터벅 부엌으로 가 반려견의 밥그릇이 비어 있는 걸 본 당신은 사료 봉다리를 집어든다. 반려견은 ‘바스락’하는 사료 봉지 소리를 듣고 얼른 부엌으로 달려나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10초만에 해치운다. 당신은 출근을 하고 반려견은 현관 앞에 엎드린 채 당신을 기다린다. 8시간 후, 그토록 기다리던 당신이 나타났다. 당신과 반려견은 열렬히 재회의식을 나눈다. 그리고 당신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을 반려견을 위해 다시 사료가 가득 담긴 밥그릇을 바닥에 내려둔다. 반려견은 사료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당신이 TV를 보며 지친 몸을 소파에 누이면 반려견은 다시 침대나 당신의 곁에서 턱을 괴고 누워 잠을 청한다. 물론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반려견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개들 중에 열에 여덟, 아홉은 이와 아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개는 사냥을 하던 동물임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했던가. 인간과 함께 살기 이전, 개들은 이 한 줄의 성경 말씀을 충실히 실천했던 동물이다. 먹이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땅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너른 숲속과 들판을 떠돌고, 사냥감을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사냥감을 쫓고, 피튀기는 사투를 벌였다. 사냥에 성공한 개들이 먹이를 그냥 먹느냐? 그것도 아니다. 강한 이빨로 사냥감을 갈갈이 찢어 뼈까지 으득으득 씹어먹었다. 이러한 사냥 본능은 개가 아무리 우리와 함께 지낸 세월이 길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런데 현대 개들의 식사시간은 어떤가. 개들은 반려인이 주는 사료를 아주 편안하게 앞발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던 개가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하겠는가? 개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신체(발, 꼬리, 생식기 등…) 을 끊임없이 핥고, 깨물기도 하고, 집안의 물건들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것을 먹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 당장 밥그릇을 버려라 만약 개가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는 것을 진정으로 즐기고 행복해한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밥그릇에 밥을 주면 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개는 이런 먹이를 원하지 않는다. 개가 진정으로 원하는 식사는 충분히 냄새 맡고, 먹이를 쫓고, 해체하여 어렵게 먹이를 얻는 것이다. 그러니 밥그릇을 버리자. 밥그릇을 버리면 대체 밥을 어디다 주느냐고? 지금부터 밥그릇 없이 행복한 식사 시간을 만드는 방법 2가지를 소개할테니 이 글을 다 읽은 후에 당신이 할 일은, 엉덩이를 일으켜 부엌으로 가 당장 밥그릇을 버리는 것이다. 스낵볼을 이용하기 스낵볼은 음식을 안에 넣을 수 있는 형태의 장난감을 말한다. 이 스낵볼에 밥을 주게 되면 반려견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냄새도 맡아보고, 이리저리 굴려도 보고, 물어뜯기도 한다. 스낵볼을 이용하면 사료를 10초만에 없애 버렸던 반려견이 15분~20분 정도 즐겁게 식사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스낵볼이 없다면 사료를 조금씩 담아 구긴 종이컵을 여러개 준비하여 집안 곳곳에 숨기는 것도 좋은 식사 시간이 된다. 숨겨진 먹이를 찾기 위해 냄새를 맡으며 집안 곳곳을 탐색하고, 먹이가 담긴 종이컵을 산산히 찢어 갈기는 짜릿한 쾌감까지 느낄 수 있다. 훈련 보상물로 음식을 이용하기 교육과 훈련을 오해하는 보호자들 중에는 “그렇게까지 강아지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견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개는 사람의 약 2세~7세 정도 지능을 가진 아주 똑똑한 동물이다. 이렇게 지능이 높은 동물에게 그 어떤 두뇌 활동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어린 아이를 유치원에도 안보내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으며 어떤 교육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내 미용실에 반려견이 오기 4~5시간 전에는 음식을 주지 않고 오기를 권유한다. 배가 고픈 반려견은 내가 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며 자연스럽게 내 냄새와 미용실 환경, 미용 기구 등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미용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와 반려견이 친해지고 교감하는데도 음식이 아주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식사량 중 절반 정도는 훈련을 통해 보상으로 주도록 하자. 반려견은 자연스럽게 당신을 든든한 리더로 인식하고 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는 것’ 자체 보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 언제부터인가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으로 "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 ‘저녁있는 삶’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도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쫓으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삶’보다는 행복하고 가치있는 삶을 우선시 하는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원한다. 그리고 내 반려동물도 보다 더 행복하게 그들의 삶을 즐겼으면 좋겠다. “밥그릇 없애기”는 반려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의 반려견이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밥그릇을 버리고 사료가 아닌 식사를 제공하자.
-
-
당신의 반려견은 사료를 먹고 있나요? 식사를 하고 있나요?
-
-
[이선필의 세계 애견문화 산책] 고대 중국 편 1부
-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치 당시 중국 올림픽유치위원회는 경쟁 도시인 파리에 대형 들개가 너무 많이 돌아다녀 위험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식견문화를 가지고 있고 동물복지에 대해서 여전히 관심을 두지 않는 중국이 애견문화의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프랑스를 상대로 이러한 전략을 펼쳤다는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중국은 결국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했다.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었던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1억 마리 이상의 반려견을 가진 중국은 실제로 강력한 법을 통해 비교적 안정된 반려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1가구 당 1견 원칙을 규정하고, 대도시에서는 35㎝ 이하의 소형견들만 소유할 수 있으며, 강력한 등록제를 통해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한 때는 십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차우차우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지금도 세계에서 품종이 우수한 비싼 개들은 거의 중국인들이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반려견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동물학대 방지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고 매년 1천만 마리 이상이 음식으로 소비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국 신화 속의 개 사실 중국은 하나의 애견문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라이다. 56개나 되는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단일한 애견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민족은 개를 숭배하는 반면, 어떤 민족은 여전히 개고기를 즐기며 대대적으로 축제까지 열고 있다. 심지어는 개를 자신들의 선조로 생각하는 민족도 있다. 스스로 곰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야오족과 서족이 그렇다. 그들이 숭배하는 개는 신화 속의 왕 제곡고신씨의 반려견 판허(Panhu)다. 제곡고신씨는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공을 세운 자에게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했다. 이에 판허가 나서 적의 장수를 물어 죽여 머리를 가져다 바쳐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결국 공주와 결혼해 남쪽 산악지역으로 내려가 대대로 번성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전설을 믿는 야오족과 서족은 판허를 자신들의 왕으로 숭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판허 신화가 묘족과 리족에서는 조금 변형되어 나타난다. 왕이 개를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기를 주저하자 판허가 종 속에 들어가 280일이 지나면 사람이 된다고 말하고 종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왕은 참지 못하고 279일 째에 종을 열어봤기 때문에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몸통만 사람인 반인반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이들 지역에서는 당연히 개의 학대나 개고기가 금지되고 있다. ▲ 판허신화 그림 또 다른 신화는 개가 인간에게 곡물의 씨앗을 전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쓰촨성의 티벳족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곡물은 매우 크고 잎이 풍성했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용변을 본 후 그 잎을 위생용으로 사용했는데, 이를 본 하늘의 신이 화가 나서 곡물의 씨를 모두 회수해 가려 했다. 이 때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울면서 간청했다. 이에 감동한 신은 곡물의 씨앗 몇 개를 남겨주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주식인 곡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는 티벳족 뿐만 아니라 부이족, 거라우족, 하니족, 수이족, 좡족 등이 믿고 있다. 한편 묘족은 원래 개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곡물을 훔치다가 간수에게 걸려 싸우다가 여덟 개의 꼬리를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 남은 꼬리에 씨앗 감추어 지상의 인간들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좡족과 거라우족은 곡물의 머리 부분이 개의 꼬리처럼 구부러져 있고 털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개에게 곡물을 빚지고 있으니 이 신화를 믿는 민족들은 추수를 하면 꼭 개에게 음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개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은 많다. 손오공의 다리를 물어 이랑신이 손오공을 생포하도록 공을 세운 이랑신의 반려견 이야기도 있다.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사자성어가 여기서 생긴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하늘의 개 천구(天拘)이야기도 있다. 하늘에 사는 검은 개 천구가 배가 고파 해와 달을 삼켜버려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 북을 울려 개를 놀라게 해 해와 달을 뱉어내도록 해야 일식과 월식이 사라진다고 한다. 과학적 설명이 없던 시대에 일식이나 월식은 사람들에게 분명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개와 연결시킨 것이다. 중국 신화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물들은 대부분 용, 해태, 봉황과 같은 상상 속의 동물이거나 여러 동물이 결합된 기괴한 모습의 동물이다. 그런데 개는 신화 속에서 거의 대부분 현실의 온전한 동물로서 등장한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가축으로서 오래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이 가장 잘 아는 동물이기에 개를 상상의 동물로 그리거나 날개가 달린다거나 하는 모습으로 그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다른 지역 신화 속의 개들은 대부분 이름을 가지는데 반해 중국 신화 속에 등장하는 개는 판허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고유한 이름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구처럼 그저 하늘의 개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개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물론 앞에서 말한 소수민족의 경우는 예외이다. 사실 중국 신화에서는 그리스나 이집트와 같이 개가 사후세계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신이라거나 하는 개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를 신비한 동물로 묘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개고기 윤리학 개고기의 윤리적 문제는 오늘날의 중국에서도 논쟁거리이다. 하긴 아무리 경제가 발달하고 애견인구가 늘어도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진 개고기 섭취 문화가 한 순간에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도 개고기 섭취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개를 포유동물의 조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포유동물을 의미하는 거의 모든 한자에는 犬의 변형인 개사슴록변(犭)이 들어있다. 예를 들어 여우 호(狐), 이리 랑(狼), 사자 예(猊고)처럼 형태상 유사한 동물뿐만 아니라 고양이 묘(猫), 원숭이 유(猶), 돼지 저(猪)처럼 전혀 상관없는 동물들의 한자에도 개사슴록변을 쓰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개가 최초의 가축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알아가는 동물들의 명칭을 만드는데 개를 의미하는 개사슴록변을 붙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 개는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포유동물의 하나일 뿐이었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개를 음식 재료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포유동물의 하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먹을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개는 사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했다. 개는 신이 내려준 선물로서 존중받았지만 특정한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목적의 첫째는 인간에게 음식을 제공해 인간이 생존하는데 돕는 것이고, 둘째로는 제물로서 희생되어 인간의 제례의식에 기여하는 것이다. 첫 번째 목적에서 개는 먹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주었다. 중국에서 개고기 섭취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136년 국교가 된 유교도 개의 식용을 금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먹는 개와 다른 용도의 개를 구분함으로써 개고기 섭취를 정당화했다고 할 수 있다. 개고기 섭취가 유교의 윤리학과 결코 대립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 역시 개를 길렀는데, 개고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신 예기 4장에서 자신의 개가 죽었을 때 머리가 흙에 닿지 않도록 거적으로 싸서 묻으라고 하여 죽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리만을 언급하였다. 유교의 경전 중 하나인 주례는 개를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각각은 사냥견(tianquan-田犬), 경비견(feiquan-吠犬), 음식의 재료가 되는 개(shiquan-食犬)이다. 이러한 논리는 ‘여전히’ 개고기를 섭취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주나라 시대의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개의 역할에 따라 개를 구분해 놓았는데, 집과 재산을 지키는 개(shougou-守狗), 사냥개(liegou 獵狗), 경주용 개(zougou-走狗), 애견이나 반려동물로서의 개(xugou-畜狗)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식용으로서의 개에 대해서는 따고 구분해 놓지 않았다. 이는 개가 원래 먹기 위해서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고대 중국의 개 모양 도자기 어쨌든 개고기는 고대 중국에서 대중적으로 소비되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바비큐 형태로 먹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개고기는 중국어로 개고기 연(肰)인데, 태우다 혹은 굽는다는 한자는 불 화(灬) 위에 개고기 연을 올려놓은 불탈 연(然 )이기 때문이다. 후에 제사에서 사용할 탕에 개고기를 사용하면서 이른바 ‘보신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봉건영주들의 식탁에는 종종 개고기를 이용한 탕과 밥이 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개고기가 대중적이었지만 구도((狗屠)라고 부른 이른바 개백정은 신분이 매우 낮은 직업이었다. 위진남북조시대 정치가인 범엽은 그들은 게으로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했다. 개고기는 신분을 불문하고 제사 등의 행사를 하고 식사로 즐겼을 만큼 대중적이었다. 당연히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으로도 사용되었다. 개의 기름으로 튀긴 물고기를 먹으면 여름에 열을 낮춰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황제는 주로 가을에 개고기를 먹었는데, 이는 피로를 줄여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에 출판된 중국의 역사서 국어에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왕이 징집할 인구를 늘리기 위해 남자아이를 낳는 가족에게는 두 항아리의 술과 산모에게 먹일 개 한 마리를 출산 장려금으로 주었다. 대신 여자아이를 낳은 가족에게는 두 항아리의 술과 돼지를 주었다. 이렇게 개고기 중국인들이 ‘죽고 못사는’ 돼지고기보다 고급 음식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송나라 시대 귀족의 연회 /사진=public domain 하지만 이러한 관습은 기원후 1세기 경 불교의 도입과 4세기경 도교의 확장 이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불교는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살생과 육식을 금한다. 도교 역시 자연친화적인 교훈을 가지고 있다. 도교는 유교와는 달리 제례 등을 고집하기 않기 때문에 제사에서 사용되기 위한 개의 도축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또한 도교는 윤회와 같은 사후세계관을 가지지 않았고 윤리학 역시 “자비로움慈, 검소함儉, 겸손함不敢為天下先”을 강조하기 때문에 개의 학대와 같은 문제에 단호했다고 할 수 있다. 6세기~7세기 정도에 와서는 중국에서 일부 민족을 제외하고는 상층계급에서부터 개고기 섭취는 금기시되었다. 1644년 청나라가 들어서고부터는 아예 개를 죽이거나 먹거나 개 가죽으로 옷을 만드는 일까지 금지시켰다. 이것은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와 개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누리하치가 명나라 군대의 추격을 받고 화살을 맞아 초원 위에 누워있을 때 명나라 군대는 초원을 불태워버렸다. 이에 개 한 마리가 주변의 호수에 뛰어들어 물을 자신의 몸에 묻혀 주변의 풀들을 적셔 누르하치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러니 어떻게 개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또 다른 개들의 희생 고대 중국에서 음식을 위한 개들의 희생과는 별개로 또 다른 형태의 희생도 많이 존재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중국인들은 개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개의 피를 신성하게 여겼고, 종종 맹약식 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제사를 위한 제물로 상용된 것은 물론 각종 액운을 쫓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되곤 했다. 기원전 1600~1046년 상나라(은나라)의 수도였던 안양 주변에서 발굴된 무덤들에서는 수많은 인간의 유골과 함께 제물로 희생된 개들이 함께 발굴되었다. 거의 모든 무덤에서 개의 유골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장례 의식에서 개의 매장이 일상적이었던 같다. 유적지에서는 825명의 사람 유골과 함께 말 10마리, 황소 10마리, 양 18마리. 개 35마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개들은 통상 갈대 매트로 싸이거나 나전칠기 관에 묻혀 있었고, 때때로 추가 달린 작은 종이 개의 목에 매어 있었다. 목에 종이 매여 있었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반려견으로 키우던 개였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세후세계를 동행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 한나라 후기 개 모양 진흙상 / 사진=public domain 또한 개는 질병이나 액운을 막아주는 동물로 여겨졌다. 따라서 사람들은 집을 짓거나 성곽을 축조할 때 근처에 개를 묻곤 했다. 또한 상나라 시대의 갑골에서는 태풍과 같은 강한 바람을 멈추게 하기 위해 개를 죽여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적혀있다. 주례에서도 전염병을 쫒기 위해 개를 조각내서 성문밖에 묻거나, 귀신을 쫓기 위해 황제가 옥으로 된 마차를 타고 바퀴로 개를 밟고 지나가는 의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지방 관리들은 이 의식을 위해 얼룩이 없는 개를 공급해야 했다. 이러한 풍습은 기원전 5세기 경을 기준으로 점차 밀짚으로 만든 개 형상으로 대체되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나온 것으로 보아 점차 퍼져나간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집 앞에 짚으로 만든 개 모형이나 형상을 세워두곤 했는데, 이는 재난에 대비해 마당에 개 혹은 짚으로 만든 개를 묻었던 관습에서 유래한다. 어쨌든 죽은 사람과 함께 동물을 묻는 행위는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기원전 200년을 전후로 점차 흙으로 만들어진 조형물로 대체되었다. 중국 북부 지역에서는 사악한 영혼을 쫓기 위해 액막이로 종이를 잘라 개 모양을 만들어 이것을 5월 5일 단오절에 강에 띄워 보내는데, 이것 또한 액막이 행사의 일환이다. (2편에 계속) 글 / 이선필 정치학박사 한국외대 강사 뷰티독스일산애견학원 대표
-
-
[이선필의 세계 애견문화 산책] 고대 중국 편 1부
-
-
[이선필의 세계 애견문화 산책] 페르시아 제국 편
- 개들의 천국 페르시아 몇 년 전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300』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다. 광고에 이끌려 선택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을 넘어 모욕감마저 느꼈던 영화이다. 아름답고 잘 생긴 스파르타(유럽)인들과 괴물과도 같은 모습을 한 페르시아(아시아)인들의 전투를 선과 악,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선진과 후진이라는 대립적 축을 통해 영상화한 이 영화는 지독한 오리엔탈리즘을 내포하고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이란과 대립중인 서구인들이 과연 열광할만한 영화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란에서 탄생한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 대해서는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조로아스터교를 기반으로 한 페르시아제국은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가장 선진적인 문명권이었을 뿐만 아니라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국가였다. 영화가 왜곡했던 악의 제국이 절대 아니었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묘사되지 않은 것도 있다. 영화에서 왜곡되어 나오는 페르시아 황제인 크세르크스는 당시 인도산 마스티프 전투견 부대를 데리고 전쟁에 참전했다. ▲ 영화 『300』에 나오는 페르시아의 왜곡된 이미지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국가였다는 말은 애견문화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페르시아 제국의 후계자인 오늘날의 이란은 사실 애견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애견 관련 용품의 광고도 금지되고 길거리에 개를 데리고 나오면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이란이 그렇게 싫어하는 서구문화의 모방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고대 페르시아는 개들에게 있어서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오늘날의 의미에서 보면 이른바 동물복지 개념이 존재했던 지역이었다. 이것은 조로아스터교가 가지는 창조관, 도덕관, 사후세계관 때문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 위의 심판자 오늘날의 이란에는 sag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들이 많다고 한다. sag은 고대 페르시아어로 1/3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개라는 의미 역시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1/3이 개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개의 영혼의 1/3은 인간이라는 페르시아인들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DNA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33.3%의 영혼이 인간이라면 개는 인간과 영혼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는 이야기이다. 조로아스터교에 따르면 개(동물)는 사악한 영혼의 창조물인 늑대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원시 황소의 정액으로부터 탄생되었다고 한다. 개가 늑대로부터 진화한 것이라는 오늘날의 증거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개를 특별하게 대우했다. ▲ 조로아스터교의 사후세계관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개가 이롭고 깨끗하며 정의로운 동물이기 때문에 잘 보살펴야 하는 동물로 여겼다. 가정에서 주인의 재산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악마를 물리쳐주는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개가 눈으로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악마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에서도 개는 사후세계와 연관되어 있다. 즉, 개가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다리 사이에 놓인 친바트 브리지라는 심판의 다리를 지키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아누비스가 수행했던 심판자의 역할과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아누비스는 지옥으로 가는 길목에서 심판자의 역할을 한 반면, 페르시아에서는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심판자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페르시아에서 개를 기르는 것은 죽은 자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이 환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3일 동안은 죽은 사람에게 제공될 분량만큼의 음식을 개에게 주었다. 만약 개가 없으면 식사 때마다 들짐승들에게라도 음식을 제공했다. 동물복지의 나라 페르시아 개가 천국으로 가는 길의 심판자이자 죽은 자를 기억하기 위해 기르는 것이기 때문에 페르시아에서는 당연히 개에 대한 대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좋은 대우는 조로아스터교의 의식법과 민법을 기록하고 있는 벤디다드 경전에 자세히 적혀있다. 이 경전은 개 학대를 금하고 가정견이든 떠돌이 개든 개를 다를 때는 정성을 다 하라고 한다. 또한 개를 돕거나 해를 끼치는 것은 사람을 돕거나 해를 끼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개를 죽이는 행위는 사후에 천벌을 받게 되어 있다고 한다. 집 근처에 임신한 개가 있으면 적어도 새끼가 태어나거나 새끼들이 혼자 설 수 있는 6개월 동안 잘 보살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아서 개가 해를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계획적 살인행위로 천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최고의 신인 이후라 마즈다의 아들인 불의 신 아타르(Atar)가 위에서 지켜보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나 쥐 등과 같은 동물을 죽이는 것조차도 신성하지 못한 행위로 비난받았다. 경전은 개에게 주는 음식까지도 자세히 적어놓고 있다. 개에게는 고기와 함께 우유 및 기름진 음식을 주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는 세 입 정도의 음식을 남겨 반드시 개에게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지옥에서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에게 음식을 주지 않으면 지옥에서 고문의 고통을 받는다. 또한 개에게 너무 딱딱해서 목을 다칠 우려가 있는 뼈를 주거나 너무 뜨거워서 목에 해를 입히는 경우도 중요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개에게 나쁜 음식을 주는 행위는 사람에게 나쁜 음식을 주는 행위와 같다. 어떤가? 오늘날보다 동물복지가 더 잘 이루어진 지역 아닌가? 페르시아 토테미즘과 개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시신이 매장된 곳은 더러운 땅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생명이 없는 시신은 단지 오물일 뿐이고 여기에는 나수(Nasu)라는 악령이 깃들어 부패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침묵의 탑이라는 곳 위에 시신을 두어 비바람에 노출되고 동물들이 뜯어먹게 해 자연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풍장 의식을 진행했다. 개의 장례도 사람의 장례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풍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편 개가 사후세계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에 사람의 장례 의식에서도 이용되었다. 조로아스터교 경전에는 sagdid라는 말이 있는데, ‘개에게 보이기’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사람이 죽으면 4살 이상의 수컷 개에게 시신을 확인하게 한다. 침묵의 탑에 안치될 때까지 이러한 행위를 세 번 반복한다. 이것은 사람보다 예민한 개의 감각을 이용해서 정말로 죽은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개의 응시는 정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개에게 시신을 보여줌으로써 시신을 정화시킨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은 19세기 개혁적 조로아스터교도들에 의해 비난받으면서 20세기에 와서는 완전히 금지되었다. ▲ 상상 속의 새 simurg 고대 페르시아 신화에는 Simurg이라는 거대한 상상 속의 새가 나타난다. 이 새의 얼굴은 개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사자의 발톱과 공작의 날개와 꼬리를 하고 있다. 개의 얼굴이 아니라 때때로 사람의 모습을 한 인면조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 새가 보호와 치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물과 땅을 정화하고 다산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게다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개는 전쟁에서도 자주 이용되었다. 전투견으로 이용된 개는 주로 마스티프였다. 사실 페르시아 전쟁에서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양측 모두 목에 철심이 박힌 거대한 마스티프를 전투견으로 사용했다. 페르시아는 주로 인도에서 수입된 마스티프를 활용했다. 제 1차 페르시아전쟁에서는 그리스가 승리했는데, 이 때 그리스 전투견들이 공을 세웠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그리스 승리기념관에는 전투견 조각상이 남아있다. ▲ 페르시아 마스티프 고양이를 미워한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한 마스티프들의 희생을 예외로 한다면, 페르시아는 아마도 개들에게 가장 살기 좋은 천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페르시아라고 하면 곧 바로 페르시안 고양이를 떠올릴 것이다.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긴 털을 가진 매혹적인 이 고양이의 이름이 페르시안이기 때문에 페르시아 제국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고양이가 1620년 현재의 이란에서 이탈리아로 수입되어 유럽에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페르시안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 제국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중동 지역에서는 오히려 이란고양이라고 부른다. 사실 고대 페르시아에서 고양이는 그렇게 환대받지 못하던 동물이었다. 조로아스터교는 무슬림과는 다르게 고양이를 사악하고 해로운 동물로 여겼다. 페르시아에서 고양이에 관한 기록은 사산조 왕조(221-651)에서야 나온다. 이 이전까지는 고양이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 썼다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사산조 왕조의 신화에 따르면 고양이는 사악한 영령에 의해 창조된 동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양이가 물에 오줌을 누면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죽고, 고양이가 밥을 먹은 그릇은 일곱 번을 씻는다고 해도 더럽다고 했다. 고양이의 털이 닿은 음식을 먹으면 쇠약해진다고 한다. 특히 검은고양이는 악마 그 자체였다. 아침에 검은 고양이를 보면 불운하다고 믿었고, 고양이 꿈을 꾸면 도둑을 맞게 된다고 믿었다. ▲ 페르시안 고양이 조로아스터교가 고양이를 악마화 했지만, 사람들은 고양이를 애완용이나 쥐를 잡는 용도로 이용하기도 했다. 여성들은 종종 고양이에게 귀걸이나 목걸이를 해 주기도 하고 털을 염색하기도 했으며, 고양이와 함께 잠을 자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일부에 한정된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아마도 일탈적 행동이었을 것이다. 7세기 사산조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호로스 2세는 아제르바이잔의 Ray라는 도시를 미워해 그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새로운 총독을 임명해 고양이를 모두 죽이도록 했다. 모든 고양이를 무자비하게 죽이고 나서 쥐 숫자가 늘어났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왕이 원했던 대로 이 도시는 결국 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비가 왕을 설득해 총독을 다시 돌아오게 하고 나서 도시는 복원되었고 고양이도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고양이를 이렇게 미워했으면서도 페르시아인들에게 있어서 고양이는 유용한 동물이기도 했다. 그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양이를 치료 목적으로 사용했다. 열을 내리는데 고양이 똥을 오일과 함께 섞어 사용했으며, 고양이 피는 나병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페르시아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양이가 자신의 똥이 약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똥을 묻어버린다고 한다. 고양이는 다산성과도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불임 치료 능력이 있다고도 믿었다. 불임을 치료하기 위해 여성은 고양이 태반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물을 뿌린다. 물이 여인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면 그녀의 불임이 치료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
-
[이선필의 세계 애견문화 산책] 페르시아 제국 편
-
-
[이선필의 세계 애견문화 산책] 근대유럽 편
- 근대유럽은 14세기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되어 18세기 계몽주의를 통해 완성된다. 모든 것을 신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했던 사람들은 이제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는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변화시켰을까? 즉,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들고, 이후 갖가지 동물들을 만들어 이들을 지배하게 했다는 중세의 자연질서관 역시 변화했을까?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 따라 행동했던 동물들에 대한 처우는 좀 더 나아졌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귀족 가문에서 잘 대우받던 사냥개나 일부 애완동물을 제외한다면 개나 고양이에 대한 학대는 여전했다. 16세기 영국에는 ‘쳇바퀴 돌리는 개’라는 뜻을 가진 vernepator cur 혹은 키친독(kitchen dog)이라는 개가 존재했다. 이 개는 중산계급의 부엌에서 일하는 사역견(working dog)으로 한 쪽 벽에 부착된 쳇바퀴 속에 들어가 열심히 제자리 달리기를 하면서 쳇바퀴를 돌렸다. 마치 햄스터처럼 말이다. 쳇바퀴는 체인으로 연결되어 벽난로 앞에 놓인 회전 꼬챙이에 연결되었다. 그리고 꼬챙이에는 저녁식사를 위해 준비한 고기가 끼워져 빙글 빙글 돌아간다. 개가 지쳐 속도가 느려질 때면 주인은 얼른 벽난로에서 뜨거운 석탄 조각을 하나 집어 쳇바퀴 안에 넣었다. 그러면 뜨거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사력을 다해 쳇바퀴를 돌렸다. ▲ 키친독 그림 이 슬프고도 잔인한 광경은 19세기 초까지 영국의 대가족 가정집 부엌에서 저녁마다 반복되었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키친독은 주일이면 이 지겹고도 고된 강제노동에서 해방되어 주인과 함께 교회에 가곤 했다. 하지만 주인이 키친독을 교회에 데려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된 노동을 했던 개의 안식이 아니라 자신의 발 위에 앉아있게 함으로써 설교를 듣는 동안 꽁꽁 언 발을 녹여주는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비록 점점 줄어들었지만 중세시대처럼 개와 고양이는 여전히 마녀사냥의 대상이었고, 개들은 계속해서 황소나 곰과 싸우면서 희생되었다. 귀족계층 사이에서는 16세기부터 이미 애완견의 개념이 등장했지만, 농민 혹은 중산계급이 키우던 개는 여전히 애완견 혹은 반려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기르던 개들은 주로 목동견, 경비견, 키친독과 같은 사역견이었다. 즉, 중산계급 이하 사람들과 개의 관계에는 ‘애완’ 혹은 ‘반려’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감정이 이입되어 있지 않았다. 근대 유럽에서 개의 지위는 어떻게 보면 더욱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신보다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동물과 인간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17세기 초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영혼이 없는 동물은 ‘자동인형’ 혹은 ‘움직이는 자동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키친독은 사람들이 개를 ‘움직이는 자동기계’로 생각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중세에서와 마찬가지로 근대에도 역시 개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용할 수 있는 인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게다가 18세기에 탄생한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성을 가지지 못한 동물은 그저 기계장치에 불과하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개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애초에 불가능했는지 모른다. 기계에 애정을 가지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 데카르트의 자동기계 근대유럽에서도 귀족들과 상류층들은 여전히 애정을 가지고 개들을 잘 대우한 것이 사실이다. 중세시대처럼 그들은 사냥과 같은 고상한 취미를 위해 사냥개들을 잘 관리했다. 귀족 가문의 여인들은 비록 그것이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개들을 애완견으로서 잘 대우했다. 그런데 이런 좋은 대우의 이면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는 것 같다. 14세기 성직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은 유일한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을 잘 보살피는 것은 자기 자신의 품성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귀족들이 개를 잘 대우했던 것은 오늘날 동물복지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동물도 도덕적 지위를 가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의 도덕적 품성을 주변에 내보이기 위한 수단이었을 수 도 있다. 중세 이후에 그려진 수많은 예술작품에 개가 등장하는 것은 단순히 개의 용맹함이나 충실함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 조차도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동물에 대한 자비로운 감정이 인간에 대한 자비로운 감정을 계발해 준다고 설파했다. 즉, 동물을 잘 돌보면 자기 자신이 도덕적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 귀족 등 상류층 사람들은 개를 잘 돌봄으로써 자신들이 하층계급 사람들과는 다르게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상류층의 도덕적 자기만족이나 우월의식과는 별개로 근대유럽에서도 개와 고양이는 여전히 학대의 대상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그리스-로마시대에 활발했으나 중세시대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금지되었던 해부학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사람의 시신 해부에 대한 교회의 여전한 반대 때문에 살아있는 동물해부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17세기 프랑스의 포르 루아얄(Port Royal) 수도원에서는 데카르트의 신봉자들이 살아있는 동물들을 산 채로 해부했다고 한다. 동물 해부의 대상으로는 원숭이, 말, 쥐뿐만 아니라 개와 고양이도 포함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동물들은 인간의 지식탐구 욕망의 무기력한 희생양이 되었다. ▲ 포르 루아얄 수도원 투견 역시 귀족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유행이었다. 중세 이후 투견은 개가 보다 몸집이 크고 사나운 황소 혹은 곰과 싸우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아마도 흥미의 극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근대유럽에서도 이러한 형태는 유행되었지만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1835년 영국에서 동물학대 행위가 불법이 되고 곰과 황소의 가격이 비싸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곰이나 황소 대신에 개끼리 싸우는 투견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후 다양한 투견용 개들이 사육되고 미국 등으로 수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근대 초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심각한 기근이 들었을 때 개와 고양이를 먹기도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는 “파도바 사람들은 훌륭한 의사이고, 베니치아 사람들은 신사이며, 베로나 사람들은 모두 미쳤고, 비첸자 사람들은 고양이를 먹는다”는 전해 내려오는 노래가 있다. 에드워드 톱셀이라는 사람이 쓴 “네 발 달린 동물의 역사”에서는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에서는 고양이를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애견문화가 중산계층 이하로 점차 확대된 것 또한 사실이다. 중산계층에서 애완견이라는 인식은 18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에 정착되었다. 근대유럽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예술작품에서 항상 주인과 함께 있는 모습이 그려졌던 이전 시기와는 달리 개가 단독으로 작품의 소재가 되곤 했다는 점이다. 개가 인간과 함께 그려졌을 때는 인간에 대한 헌신이나 복종을 의미하지만, 단독으로 그려졌을 때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기억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주인이 자신의 반려견의 아름다움을 남기고 싶어 하는 소망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사진관에서 자신의 개나 고양이의 모습을 찍어 소장하려는 마음과 유사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개를 단순한 물건의 개념이 아니라 반려견의 개념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중산층의 애견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 애견이 대중적이 됨과 함께 19세기에는 유럽의 애견문화가 비로소 꽃피우기 시작한다. 그것은 1822년 ‘가축동물의 부당한 취급 방지를 위한 법률’ 제정과 함께 시작된다.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제정된 이 법을 시작으로 동물학대 방지를 위한 각종 법률이 제정되었고 유럽 대륙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1850년 프랑스에서 그라몬 법이, 1871년 독일에서 동물학대자 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20세기에도 이어져 다양한 분야에서 동물보호를 위한 법이 제정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동물보호법 역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비록 동물을 기계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는 했지만 계몽주의는 이성에 의거한 도덕적 행위라는 윤리학을 제시했다. ‘인생은 선을 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외치는 칸트의 윤리학은 당시까지 만연했던 동물학대를 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시의 동물보호법은 비이성적 존재인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우월적 감정에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 챨스 크러프트 19세기 유럽의 애견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도그쇼(dog show)의 탄생이다. 도그쇼가 열린다는 것은 애견문화가 점차 비즈니스화 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859년 영국 뉴캐슬에서는 소 박람회 행사 중 최초로 근대적 의미의 도그쇼가 열렸다. 이 도그쇼에는 세터와 포인터 등 사냥개 견종들만 참가했는데, 이후 버밍햄 도그쇼에서는 논스포팅 그룹까지 참가하면서 도그쇼가 확장되었다. 버밍햄 도그쇼협회 주관으로 열린 1860년 도그쇼에는 약 700마리의 견종이 참가하였고, 2만 명 이상의 유료 입장객을 끌어 모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도그쇼의 인기는 애견용 사료 산업의 등장도 가져왔다. 1860년 런던에서는 Spratt's사가 강아지용 비스켓을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유사한 강아지용 사료 제조업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 1891년 크러프트 도그쇼 이것은 개를 키우는 것이 일부 귀족층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대중적이 되어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3년 후 열린 도그쇼는 일주일 동안 1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1873년에는 영국 켄넬클럽이 창설되었다. 한편 Spratt's에서 근무했던 크러프트(Charles Cruft)는 도그쇼의 비즈니스적 잠재력을 확인하고 1878년 파리 엑스포기간 중 도그쇼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1891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Cruft Dog Show를 개최하였다. 이 도그쇼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자신의 포메라니언 6마리를 출진시키기도 하였다. 기존까지의 도그쇼에는 주로 왕족이나 귀족들이 참가했다면, 크러프트 도그쇼는 중산계급이나 노동계급까지 참가한 최초의 대중적 도그쇼였다. 사망할 때까지 고양이쇼를 포함해 총 45회의 도그쇼를 개최한 크러프트는 도그쇼계의 대부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영국 켄넬클럽이 운영하는 크러프트(Crufts) 도그쇼는 바로 그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
-
[이선필의 세계 애견문화 산책] 근대유럽 편
실시간 기사
-
-
[6화] 몸을 부르르 턴다
- 1 샤워를 마친 모찌가 몸을 부르르 턴다. 주인은 날아오는 물기를 피하려고 얼굴을 돌린다. 2 홀쭉했던 몸에서 다시 빵빵한 몸으로 다시 돌아온 모찌. 3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몸을 부르르 턴다. 4 주인은 샤워도 안 했는데, 왜 몸을 터는지 궁금해한다. 개는 목욕 후 물기를 날리기 위해 몸을 텁니다. 하지만, 물에 젖지 않아도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뭔가 싫거나, 긴장하는 등의 스트레스 상황을 해소하고자 하는 행동입니다. 개를 안고 있다가 땅에 내려놔도 같은 행동을 보입니다. 스토리 변희승(gmltmd2286@naver.com) / 그림 강원기(인스타그램 mozzifriends)
-
- [웹툰] MOZZI Friends
-
[6화] 몸을 부르르 턴다
-
-
[5화] 하품을 한다
- 1 이런 모찌가 또, 방을 어지럽혀 놨어. 2 모찌! 이리 와! 이거 누가 이랬어! 3 모찌는 나는 중에도 하품을 합니다. 4 혼나는 중인데 하품을 해?! 강아지는 혼나는 와중에도 하품을 합니다. 이럴 때, 태도가 좋지 않다고 혼내서는 안 됩니다. 개는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스트레스 상황에서 하품을 합니다. 하품은 지금 상황이 불편하고 싫고, 긴장된 상황이라는 신호입니다. 스토리 변희승(gmltmd2286@naver.com) / 그림 강원기(인스타그램 mozzifriends)
-
- [웹툰] MOZZI Friends
-
[5화] 하품을 한다
-
-
[4화] 혀로 입 주변을 핥는다
- 1 모찌가 맛있는 밥을 먹고 입 주변을 핥습니다. 2 또 먹고 싶구나. 하지만, 안 돼 살쪄. 3 밥을 먹지도 않는데, 혀로 입 주변을 핥습니다. 4 혹시!? 나를 잡아 먹으려고? 강아지는 보홀에게 혼이 나거나 불안할 때, 갑작스레 불쾌한 일이 생겼을 때, 자기 코와 입 주변을 핥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인이니, 이럴때는 긴장감을 풀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밥을 먹은 후라면 남아 있는 음식의 맛을 음미하고 싶은 것이랍니다. 스토리 변희승(gmltmd2286@naver.com) / 그림 강원기(인스타그램 mozzifriends)
-
- [웹툰] MOZZI Friends
-
[4화] 혀로 입 주변을 핥는다
-
-
[3화] 모찌, 삐진거야?
- 1 모찌는 털이 복슬복슬해서 귀여워요 2 그러던 어느 날 멀리서 모찌를 부르는데 3 가까이 오더니 눈을 피하네요. 4 얼굴을 들이대도 눈을 피하네요. 왜 그러지? 강아지가 눈을 피하는 건, ‘적대감이 없어’, ‘공격하지 마’의 신호입니다. 혹시, 반려견이 나한테 이런 신호를 보낸다면, 평소에 반려견을 대할 때, 거칠거나 힘이 들어가진 않았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토리 변희승(gmltmd2286@naver.com) / 그림 강원기(인스타그램 mozzifriends)
-
- [웹툰] MOZZI Friends
-
[3화] 모찌, 삐진거야?
-
-
[2화] 몸을 숙인다
- 1 오늘처럼 일이 쌓여 있는 날은 모찌에게 신경 써주기가 어렵습니다 2 창틀에 매달려 바깥을 바라보던 모찌의 모습을 보면 어쩐지 쓸쓸해 보입니다. 3 그럴 때면 괜히 '모찌야'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럼 냉큼 고개를 돌려보더니 저에게 달려와요. 4 앞다리와 상반신을 낮추고는 꼭 경계 자세를 취하는 것 같지만, 이건 놀아달라는 의미랍니다. 개가 앞다리와 상반신을 낮춰 절하는 자세는 함께 놀고 싶다,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이럴때는 눈빛도 반짝반짝거리고 어쩔 줄 몰라합니다. 스토리 변희승(gmltmd2286@naver.com) / 그림 강원기(인스타그램 mozzifriends)
-
- [웹툰] MOZZI Friends
-
[2화] 몸을 숙인다
-
-
[1화] 모찌, 귀신을 볼 수 있는거야?
- 1 햇빛이 창문으로 쏟아지는 오후. 모찌는 이런 날 산책하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2 모찌는 가끔 산책을 하다가, 어딘가 빤히 보곤합니다. 3 강아지는 귀신을 본다던데, 혹시 귀신을 보는 건 아닐까요!? 4 휴... 차 밑에 숨은 고양이었네요. 이럴 때는 간식으로 시선 돌리기! 개가 시선을 고정하고 뻔히 보고 있다는 건, 지금 상황을 살피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귀를 바짝 세우고, 몸 전체에 긴장감이 흐른다면, 조심해야합니다. 상대방과 싸움이 번질 수도 있거든요. 이럴 때는 상대에게 눈길을 떼게 만들고,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스토리 변희승(gmltmd2286@naver.com) / 그림 강원기(인스타그램 mozzifriends)
-
- [웹툰] MOZZI Friends
-
[1화] 모찌, 귀신을 볼 수 있는거야?
-
-
[2화] 강아지가 임산부의 친정어머니의 무릎에 안겼네요.
- 강선희(가명)씨의 친정어머니가 꾼 태몽입니다. “흰 강아지가 파란색 벨벳으로 만든 옷을 입고 제 무릎에 걸어와서 안겼습니다. 새 강아지의 파란 옷은 반짝이는 천으로 만들어졌고 보석과 장신구가 주렁주렁 달려서 화려하고 예뻤어요.” “현실에서 실제 키우던 강아지가 꿈에서도 있었는데 그 강아지가 시무룩해서 떠났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아들입니다.” 이 꿈을 꾼 친정어머니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분으로 보입니다. 현실에서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으니까요. 이 꿈은 예지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부분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앞부분은 태아의 임신을 예고한 태몽이고 뒷부분은 꿈 꾼이의 감정이 드러난 심리몽입니다. 먼저, 첫 단락의 예지적인 부분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 꿈에서 태아의 상징으로 강아지가 등장합니다. 강아지는 가족에게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애완동물입니다. 흰색은 새로운 시작이나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강아지가 파란 벨벳 옷에 보석과 장신구를 차고 있습니다. 파란 벨벳 옷은 특별하고 고귀함을, 보석과 장신구는 풍요로움과 축복을 의미합니다. 요약하면 이 태몽은 임산부가 강아지로 상징되는 태아를 임신하였거나 장차 임신하게 될 것임을 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태아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사랑받는 아이로 성장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태몽을 두 번째로 많이 꾸는 분은 누구 일까요? 이 태몽은 임산부가 아닌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꾸었습니다. 필자가 조사한 태몽사례 305건 중 임산부 본인이 꾼 꿈은 62%인 190건으로 제일 비중이 높습니다. 두번째는 친부모가 46건으로 15%를 차지합니다. 특히, 친정어머니는 임산부 다음으로 많이 꿉니다. 이같은 결과는 아이의 출생에 관해서는 친정어머니의 임산부와의 정서적 유대감이 매우 강하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세 번째가 아이아빠로 21건에 7%입니다. 그 다음은 시부모, 친척이나 심지어 이웃에 사는 아는 지인 등의 순서입니다<표 참조>. 이같은 태몽의 특성은 한 아이의 출생은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에 한정되지 않고, 가족공동체나 사회공동체의 과업임을 암시합니다. <자료> 국경복, 태몽현상을 통한 임신·출산·성별예측에 대한 통계검증, 미래연구, 8권1호, 2023, p.34 참조 이 꿈 후반부에는 꿈꾼이의 심리가 드러나 있습니다. “현실에서 실제 키우던 강아지가 꿈에서도 있었는데 그 강아지가 시무룩해서 떠났습니다.” 꿈 꾸는 이가 현실에서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는 애견이 새로운 강아지의 출현으로 자신의 관심 밖으로 멀어질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강아지가 태아의 상징으로 드러날까요? 태아는 어머니의 배 속에서 생물학적인 진화를 반복합니다. 다른한편, 태몽은 신화적인 방식으로 인류의 심리적 진화를 서술합니다. 융(Jung)은 인간이 태어날 때 생물학적 DNA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처럼 심리적 DNA도 가지고 태어난다고 봅니다. 이 심리적 DNA를 원형(archetype)이라고 하는데, 이 원형은 원시시대부터 전승되면서 신화(myth)나 민담(fairy tale)형식을 빌려서 발현됩니다. 개는 오래전부터 우리민족과 관계가 깊은 동물입니다. 앞의 1화에서 태아를 상징하는 원형상은 천체(해·달·별)나 자연(물·불·흙), 동물, 식물(과일, 꽃 등), 보석이나 사물, 인간으로 등장한다고 했습니다. 태아의 원형상으로 제일 많이 나오는 동물에는 개도 포함됩니다. 사실, 개는 우리 민족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개는 고구려 이전인 부여시대(기원전 2세기~494년)에서는 관직명 중 하나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민족은 부여나 백제시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윳놀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윳판에 새겨진 순서는 도, 개, 걸, 윶, 모입니다. 이 중 두 번째 개가 바로 개(犬)을 의미합니다. 요즈음에 강아지는 가족의 일원으로까지 인식됩니다. 고대 신화나 전설에서는 신, 인간과 동물은 상호간에 변신이 가능하답니다. 이러한 이유로 강아지도 태아의 상징인 원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필자: 국경복(cook8104@naver.com) “태몽! 새생명의 속삭임”의 저자,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
- [연재] 반려동물 태몽 스토리
-
[2화] 강아지가 임산부의 친정어머니의 무릎에 안겼네요.
-
-
[1화] 태몽에서 예쁜 강아지가 등장하네요!
- '예쁜 강아지를 와락 안았습니다.’ 다음은 백선희(가명) 씨가 임신 중에 꾼 꿈입니다. “11년 전 어느 날, 어떤 장소에 저 혼자만 있었어요. 크고 하얀 아주 예쁘고 건강한 강아지가 제 품안에 들어왔어요. 저는 평소에 동물을 무서워하는데 이 개는 무섭지 않았어요. 너무 용맹스럽고 윤기도 많고 예뻐서 와락 안았어요. 그리고 기뻤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아들입니다.” ‘이 꿈에서 강아지는 태아를 상징합니다.’ 태몽은 아이의 임신 혹은 출산을 예지하는 꿈입니다. 이 꿈에서 강아지는 태아를 상징합니다.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은 이러한 상징을 원형상(archetypal image)이라고 합니다. 태몽해석에서 아이를 상징하는 원형상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태아의 원형상은 천체(해·달·별)나 자연(물·불·흙), 동물, 식물(과일, 꽃 등), 보석이나 사물, 그리고 때로는 사람으로도 등장합니다. 나의 연구에 의하면 태아의 원형상으로 동물이 전체의 57%를 차지하여 제일 많이 나옵니다. 인간과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죠. 그다음은 식물·과일, 보석·사물, 천체·자연, 사람 순서입니다. 이 꿈에 대한 해석입니다. 흰색의 강아지는 처음이나 순수함을 뜻합니다. ‘예쁘고, 건강하며 윤기가 많다’는 의미는 장차 태어날 아이가 부모에게 큰 기쁨과 행복감을 준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크고, 용맹스러운 모습은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암시하지는 않습니다. 민가에서 이같은 모습은 아들을 상징한다고 해석하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출산한 아이가 아들이었다고 하나, 이 태몽에서는 딸을 암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와락 안았다’는 의미는 엄마의 몸에 잘 착상이 되어 성공적인 임신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꿈에서 임산부는 평소 동물을 무서워하는데도 기쁜 감정을 드러냅니다. 통계적에 의하면 태몽에서 임산부 등이 제일 많이 느끼는 감정은 기쁨과 같은 행복감입니다. 그다음으로 드러나는 감정이 무서움과 놀람입니다. 요약하면, 이 꿈은 아이가 엄마 몸에 잘 착상이 되었으며, 장차 태어날 아이는 부모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중요단계마다 의미있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태몽은 왜 꾸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임산부나 그 가족에게 아이의 탄생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지적인 꿈의 존재를 인정하는 융은 이러한 꿈을 ‘큰 꿈’ 혹은 ‘의미 있는 꿈’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인생의 중요단계마다 종종 이러한 의미있는 꿈을 꿉니다. 융의 제자였던 마리 루이즈 폰 프란스(Marie Louise von Franz)박사는 말합니다. ‘원형적인 꿈의 모티브는 학교의 시작, 사춘기, 결혼, 인생의 위기, 죽음에 대한 준비, 그리고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준비와 같은 매우 중요한 과도기적 단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임신은 세상의 완전한 창조행위입니다.’ 한편, 인간사회에는 삶의 중요한 단계마다 거쳐야 하는 의식이나 의례를 치르는 관습이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의 조상들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정한수를 떠 놓고 자신이 믿는 신에게 빌기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 앞에 금줄을 치기고 했습니다. 금줄이란 태어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민가의 습속이었습니다.프랑스 민속학자 아놀드 반 겐넵(Arnold Van Gennep)은 이러한 의식을 통과의례(rites of passage)라고 불렀습니다. 통과의례란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마다 거쳐야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프란츠 박사는 임신을 ‘세상의 완전한 창조’ 행위라고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임신 혹은 출산은 통과의례 중 과도기(transition period)에 해당하는데, 이 중요한 단계에서 임산부나 그녀의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은 이같은 정신감응적인 꿈을 꾸는 체험도 합니다. 필자: 국경복(cook8104@naver.com) “태몽! 새생명의 속삭임”의 저자,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
- [연재] 반려동물 태몽 스토리
-
[1화] 태몽에서 예쁜 강아지가 등장하네요!
-
-
당신의 반려견은 사료를 먹고 있나요? 식사를 하고 있나요?
- 철학박사 강신주의 책을 읽다가 식사와 사료의 차이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편의를 위해, 살기 위해 먹는 것은 사료다.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진정한 식사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료를 해치웠나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발치에 퍼져 멀뚱히 나를 바라보는 내 반려묘 연희와 눈이 마주쳤다. 이상 모를 죄책감이 밀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반려동물들이 그저 살기 위해 먹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견의 하루를 살펴보자. 쨍쨍거리는 알람소리, 또는 당신의 반려견의 짖는 소리에 당신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터벅터벅 부엌으로 가 반려견의 밥그릇이 비어 있는 걸 본 당신은 사료 봉다리를 집어든다. 반려견은 ‘바스락’하는 사료 봉지 소리를 듣고 얼른 부엌으로 달려나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10초만에 해치운다. 당신은 출근을 하고 반려견은 현관 앞에 엎드린 채 당신을 기다린다. 8시간 후, 그토록 기다리던 당신이 나타났다. 당신과 반려견은 열렬히 재회의식을 나눈다. 그리고 당신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을 반려견을 위해 다시 사료가 가득 담긴 밥그릇을 바닥에 내려둔다. 반려견은 사료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당신이 TV를 보며 지친 몸을 소파에 누이면 반려견은 다시 침대나 당신의 곁에서 턱을 괴고 누워 잠을 청한다. 물론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반려견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개들 중에 열에 여덟, 아홉은 이와 아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개는 사냥을 하던 동물임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했던가. 인간과 함께 살기 이전, 개들은 이 한 줄의 성경 말씀을 충실히 실천했던 동물이다. 먹이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땅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너른 숲속과 들판을 떠돌고, 사냥감을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사냥감을 쫓고, 피튀기는 사투를 벌였다. 사냥에 성공한 개들이 먹이를 그냥 먹느냐? 그것도 아니다. 강한 이빨로 사냥감을 갈갈이 찢어 뼈까지 으득으득 씹어먹었다. 이러한 사냥 본능은 개가 아무리 우리와 함께 지낸 세월이 길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런데 현대 개들의 식사시간은 어떤가. 개들은 반려인이 주는 사료를 아주 편안하게 앞발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던 개가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하겠는가? 개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신체(발, 꼬리, 생식기 등…) 을 끊임없이 핥고, 깨물기도 하고, 집안의 물건들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것을 먹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 당장 밥그릇을 버려라 만약 개가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는 것을 진정으로 즐기고 행복해한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밥그릇에 밥을 주면 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개는 이런 먹이를 원하지 않는다. 개가 진정으로 원하는 식사는 충분히 냄새 맡고, 먹이를 쫓고, 해체하여 어렵게 먹이를 얻는 것이다. 그러니 밥그릇을 버리자. 밥그릇을 버리면 대체 밥을 어디다 주느냐고? 지금부터 밥그릇 없이 행복한 식사 시간을 만드는 방법 2가지를 소개할테니 이 글을 다 읽은 후에 당신이 할 일은, 엉덩이를 일으켜 부엌으로 가 당장 밥그릇을 버리는 것이다. 스낵볼을 이용하기 스낵볼은 음식을 안에 넣을 수 있는 형태의 장난감을 말한다. 이 스낵볼에 밥을 주게 되면 반려견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냄새도 맡아보고, 이리저리 굴려도 보고, 물어뜯기도 한다. 스낵볼을 이용하면 사료를 10초만에 없애 버렸던 반려견이 15분~20분 정도 즐겁게 식사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스낵볼이 없다면 사료를 조금씩 담아 구긴 종이컵을 여러개 준비하여 집안 곳곳에 숨기는 것도 좋은 식사 시간이 된다. 숨겨진 먹이를 찾기 위해 냄새를 맡으며 집안 곳곳을 탐색하고, 먹이가 담긴 종이컵을 산산히 찢어 갈기는 짜릿한 쾌감까지 느낄 수 있다. 훈련 보상물로 음식을 이용하기 교육과 훈련을 오해하는 보호자들 중에는 “그렇게까지 강아지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견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개는 사람의 약 2세~7세 정도 지능을 가진 아주 똑똑한 동물이다. 이렇게 지능이 높은 동물에게 그 어떤 두뇌 활동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어린 아이를 유치원에도 안보내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으며 어떤 교육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내 미용실에 반려견이 오기 4~5시간 전에는 음식을 주지 않고 오기를 권유한다. 배가 고픈 반려견은 내가 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며 자연스럽게 내 냄새와 미용실 환경, 미용 기구 등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미용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와 반려견이 친해지고 교감하는데도 음식이 아주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식사량 중 절반 정도는 훈련을 통해 보상으로 주도록 하자. 반려견은 자연스럽게 당신을 든든한 리더로 인식하고 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는 것’ 자체 보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 언제부터인가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으로 "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 ‘저녁있는 삶’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도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쫓으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삶’보다는 행복하고 가치있는 삶을 우선시 하는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원한다. 그리고 내 반려동물도 보다 더 행복하게 그들의 삶을 즐겼으면 좋겠다. “밥그릇 없애기”는 반려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의 반려견이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밥그릇을 버리고 사료가 아닌 식사를 제공하자.
-
-
당신의 반려견은 사료를 먹고 있나요? 식사를 하고 있나요?
-
-
개는 고요하고 침착한 리더를 원한다.
- 리더십만 잘 세워도 대부분의 행동문제는 해결된다. 반려인들은 자신의 반려견을 자식처럼 키운다. 그래서 우리는 반려견에게 딸, 아들 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사랑하는 자식이니까 반려견이 하는 모든 행동을 받아준다. 장난감을 물어오면 놀아주고, 산책을 나가자고 문 앞에서 짖으면 산책을 나가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강아지가 뽀뽀 세례를 퍼부으면 입술을 쭈욱 내밀어 ‘우쭈쭈 내 새끼 잘 있었어?’ 하고 기꺼이 무릎을 꿇고 얼굴을 내어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행동은 개에게 '흠... 이 집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구만. 내가 이 집과 가족들을 지켜야겠어.' 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우리가 자식이라고 생각하여 쏟는 애정이 오히려 반려인을 ‘지켜야 할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억지로 등이 떠밀려 무리의 리더가 된 반려견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시시각각 문밖의 침입자를 경계해야 하고(외부인에 대한 공격성, 짖음), 산책을 할 때는 위협적인 것들로부터 반려인과 나를 지켜야 하고(산책 시 공격성, 짖음), 지켜주어야 할 반려인이 외출을 할 때마다 세 살배기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놓고 감옥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분리불안). 뿐만 아니라 리더십의 부재는 꼬리 쫓기, 음식이 아닌 물건 먹기, 물어 뜯기 등 수많은 행동 문제를 일으킨다. 아미시엥 본딩 교육법으로 든든한 리더 되기 아미시엥 본딩(Amichien Bonding - 개를 친구로 바라보며 유대감을 형성해 나가는 교육방법을 뜻한다 : 개가 행복해지는 긍정교육 p. 77) 교육법을 사용하면 강아지에게 소리를 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리더가 될 수 있다.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개들이 무리 내에서 서열을 확인하는 상황을 이용하여 그 순간마다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개가 서열을 확인하는 상황은 크게 4가지다. 다시 만났을 때, 위협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사냥을 나갈 때, 먹이를 먹을 때. 이 네 상황에서 아미시엥 본딩 교육을 반복하면 개는 가족과 집을 돌보는 책임이 자신이 아닌 반려인에게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아미시엥 본딩 교육 첫번 째, 재회할 때 5분 무시하기 (재회)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순간, 개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서열을 확인한다. (재회 의식) 짖거나, 핥거나, 발바닥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처럼 폴짝폴짝 뛰어오르기도 한다. 상처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반려견이 당신에게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반가워서라기 보다 재회 의식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 적어도 5분은 개를 무시하자. 설령 개가 공중부양을 하더라도 무시해야 한다. 어렵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내 할 일을 하면 5분은 금방이다. 반려견이 재회 의식을 포기하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리와~"하고 부른 뒤 예뻐해주고 칭찬해준다. 부르지 않았는데 달려와서 안아달라고 조르면 그 어떤 말도 하지 말고 가볍게 밀어낸다. 아미시엥 교육 두번 째, 손님이 왔을 때 (위협) 침입자로부터 무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반려견은 초인종이 울리면 미친듯이 짖으며 달려나가 난리법석을 피운다. 위협으로부터 무리를 지켜야 하는건 무리의 리더로서 당연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때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바깥에서 한 사람이 초인종을 누른다. 강아지가 짖기 시작하면 가볍게 칭찬을 해주고, 반려견과 함께 문으로 걸어간다. 그 다음 손님 역할을 맡은 사람은 현관문이 열리면 개를 쓰다듬거나 아는척 하지 않고 무시한다. 계속해서 짖고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반려견과 방으로 들어가 잠시 함께 있다가 나온다. 반려견이 조용해지면 다시 거실로 데려온다. 만약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면, 초인종 소리를 녹음하여 강아지에게 들려준다. '띵-동' 개가 짖기 시작하면 반려인은 일단 개에게 가볍게 고맙다고 표현하고 현관문을 열어 밖을 확인한다. 밖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 시킨 후 다시 문을 닫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려견이 침입자가 왔음을 알렸을 때, 함께 바깥을 확인해주고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침입자를 확인하고, 무리로 침입자를 들일지 말지는 리더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미시엥 본딩 교육 세번 째, 산책과 놀이를 할 때 (사냥) 산책은 ‘사냥’과 비슷한 맥락이다. 개의 무리에서는 리더가 사냥을 주도한다. 따라서 반려인이 산책의 주도권을 가져오면 반려견은 자연스럽게 반려인을 리더로 인식한다. 산책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면, 산책을 나갈지 말지부터 방향과 시간까지 전부 반려인이 결정해야 한다. 아마 산책을 가기 직전 문앞에 선 반려견은 땅! 소리가 나면 번개처럼 튀어나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출발선에 엎드린 육상선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연다. 달려나가려고 하면 다시 문을 닫는다. 이것을 반복하면 반려견은 문 앞에 얌전히 앉아 기다리게 되는데, 이 때 반려인이 먼저 문밖으로 반려견을 인도하는 것이다. 놀이도 마찬가지다. 장난감을 먼저 물고와서 '어서 던지거라'라고 하는 반려견의 요구에 응해선 안된다. 장난감은 강아지가 꺼낼 수 없는 곳에 두고 반려인이 놀이의 시작과 끝을 결정한다. 만약 강아지가 장난감을 물고 왔다면, 바로 놀아주지 말고 '앉아' 나 '엎드려'등의 요청을 한 후 보상으로 장난감을 던져준다. 이렇게 하면 반려견이 내가 놀자고 해서 노는 것이 아니라, ‘반려인의 요청에 응했기 때문에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미시엥 본딩 교육 네번 째, 먹이를 먹을 때 (음식) 개의 무리에서 가장 서열이 잘 드러나는 때는 먹이를 먹는 시간이다. 리더가 배불리 먹은 다음, 다른 구성원들도 서열에 따라 식사를 한다. 이를 적용하여 반려견에게 음식을 줄 때, 작은 비스켓이나 사탕 등을 준비해서 먹는 시늉(gesture eating)을 한 후 과자를 다 먹은 후 밥그릇을 내려두는 것인데, 사실 이 교육방법을 보호자님들께 알려드리면 다들 실천하기를 어려워 하신다. 그래서 나는 밥그릇을 내려 놓기 전에 적어도 "앉아" , "기다려", "엎드려" 등 3가지 이상의 요청을 하라고 한다. 반려견이 요청에 응하면 칭찬과 함께 보상으로 밥을 준다.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내가 읽었던 리더십과 관련된 책 중 가장 진한 여운을 남겼던 책의 제목이다. '사람을 강제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팔로워들 스스로가 잘발적으로 따르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다.'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우리가 반려견에게 보여주어야 할 리더십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십이나 서열은 강아지의 배를 드러내도록 뒤집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권위를 보여주겠답시고 윽박을 지르거나, 매를 때린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려견을 더욱 예민한 개로 만들 뿐, 절대 반려견이 스스로 따르는 리더가 될 수 없다. 개는 고요하고 침착한 리더를 원한다.
-
-
개는 고요하고 침착한 리더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