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강신주의 책을 읽다가 식사와 사료의 차이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편의를 위해, 살기 위해 먹는 것은 사료다.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진정한 식사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료를 해치웠나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발치에 퍼져 멀뚱히 나를 바라보는 내 반려묘 연희와 눈이 마주쳤다. 이상 모를 죄책감이 밀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반려동물들이 그저 살기 위해 먹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견의 하루를 살펴보자. 쨍쨍거리는 알람소리, 또는 당신의 반려견의 짖는 소리에 당신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터벅터벅 부엌으로 가 반려견의 밥그릇이 비어 있는 걸 본 당신은 사료 봉다리를 집어든다. 반려견은 ‘바스락’하는 사료 봉지 소리를 듣고 얼른 부엌으로 달려나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10초만에 해치운다. 당신은 출근을 하고 반려견은 현관 앞에 엎드린 채 당신을 기다린다. 8시간 후, 그토록 기다리던 당신이 나타났다. 당신과 반려견은 열렬히 재회의식을 나눈다. 그리고 당신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을 반려견을 위해 다시 사료가 가득 담긴 밥그릇을 바닥에 내려둔다. 반려견은 사료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당신이 TV를 보며 지친 몸을 소파에 누이면 반려견은 다시 침대나 당신의 곁에서 턱을 괴고 누워 잠을 청한다.
물론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반려견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개들 중에 열에 여덟, 아홉은 이와 아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개는 사냥을 하던 동물임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했던가. 인간과 함께 살기 이전, 개들은 이 한 줄의 성경 말씀을 충실히 실천했던 동물이다. 먹이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땅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너른 숲속과 들판을 떠돌고, 사냥감을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사냥감을 쫓고, 피튀기는 사투를 벌였다. 사냥에 성공한 개들이 먹이를 그냥 먹느냐? 그것도 아니다. 강한 이빨로 사냥감을 갈갈이 찢어 뼈까지 으득으득 씹어먹었다.
이러한 사냥 본능은 개가 아무리 우리와 함께 지낸 세월이 길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런데 현대 개들의 식사시간은 어떤가. 개들은 반려인이 주는 사료를 아주 편안하게 앞발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던 개가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하겠는가? 개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신체(발, 꼬리, 생식기 등…) 을 끊임없이 핥고, 깨물기도 하고, 집안의 물건들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것을 먹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 당장 밥그릇을 버려라
만약 개가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는 것을 진정으로 즐기고 행복해한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밥그릇에 밥을 주면 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개는 이런 먹이를 원하지 않는다. 개가 진정으로 원하는 식사는 충분히 냄새 맡고, 먹이를 쫓고, 해체하여 어렵게 먹이를 얻는 것이다.
그러니 밥그릇을 버리자. 밥그릇을 버리면 대체 밥을 어디다 주느냐고? 지금부터 밥그릇 없이 행복한 식사 시간을 만드는 방법 2가지를 소개할테니 이 글을 다 읽은 후에 당신이 할 일은, 엉덩이를 일으켜 부엌으로 가 당장 밥그릇을 버리는 것이다.
스낵볼을 이용하기
스낵볼은 음식을 안에 넣을 수 있는 형태의 장난감을 말한다. 이 스낵볼에 밥을 주게 되면 반려견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냄새도 맡아보고, 이리저리 굴려도 보고, 물어뜯기도 한다. 스낵볼을 이용하면 사료를 10초만에 없애 버렸던 반려견이 15분~20분 정도 즐겁게 식사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스낵볼이 없다면 사료를 조금씩 담아 구긴 종이컵을 여러개 준비하여 집안 곳곳에 숨기는 것도 좋은 식사 시간이 된다. 숨겨진 먹이를 찾기 위해 냄새를 맡으며 집안 곳곳을 탐색하고, 먹이가 담긴 종이컵을 산산히 찢어 갈기는 짜릿한 쾌감까지 느낄 수 있다.
훈련 보상물로 음식을 이용하기
교육과 훈련을 오해하는 보호자들 중에는 “그렇게까지 강아지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견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개는 사람의 약 2세~7세 정도 지능을 가진 아주 똑똑한 동물이다. 이렇게 지능이 높은 동물에게 그 어떤 두뇌 활동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어린 아이를 유치원에도 안보내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으며 어떤 교육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내 미용실에 반려견이 오기 4~5시간 전에는 음식을 주지 않고 오기를 권유한다. 배가 고픈 반려견은 내가 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며 자연스럽게 내 냄새와 미용실 환경, 미용 기구 등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미용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와 반려견이 친해지고 교감하는데도 음식이 아주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식사량 중 절반 정도는 훈련을 통해 보상으로 주도록 하자. 반려견은 자연스럽게 당신을 든든한 리더로 인식하고 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는 것’ 자체 보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
언제부터인가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으로 "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 ‘저녁있는 삶’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도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쫓으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삶’보다는 행복하고 가치있는 삶을 우선시 하는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원한다. 그리고 내 반려동물도 보다 더 행복하게 그들의 삶을 즐겼으면 좋겠다.
“밥그릇 없애기”는 반려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의 반려견이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밥그릇을 버리고 사료가 아닌 식사를 제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