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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사랑

‘?’를 ‘!’으로 채우지만 허전한 영화
기사입력 2016.10.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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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부터 시작하자면, 이제는 진짜 정치인이라면 포퓰리즘과 싸워야 하고, 진정성이 넘치는 예술가라면 속물주의자와 투쟁해야 하고, 반려동물을 진실로 사랑하는 이라면 반려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적대자에게 승리하려고 단결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정이나 반려동물을 버리는 적대자들이 나온다. 제작노트를 살펴보면 아이들과 자살을 기도하는 비정한 현실에서 사회적 문제점을 치유하고자 다룬 영상물을 기획한 것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다루는 스토리는 보호소 유기견의 실제안락사에 대한 슬픈 이야기, 반려동물 강아지, 고양이를 학대하는 비인간적인 현실, 결손 가정에서 어린 아이들이 겪는 내면의 아픔, 경제적 어려움으로 파괴된 가정, 지속된 스트레스로 단절된 가족들과의 일상이야기를 다룬 각각의 시퀀스로 나뉜다.
영화 시퀀스 하나에는 비슷한 목표들을 몇 분 동안 공통적으로 모아놓은 캐릭터의 욕망과 주요 갈등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많은 사회적인 문제점을 다루려고 했고 등장하는 캐릭터는 모아지지 않으며 흩어져있어서 관객의 감정이입능력을 배가시키는 게 아니라 분산시키는 약점이 있다. 예컨대 도입부 장면부터 주인공보다 적대자가 먼저 나오고 그 적대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어딘가로 부지런히 사라지고 그 이후로 잘 안보인다.
 
각본의 딜레마, 스토리의 부재에 관하여
종종 이 각본의 딜레마에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강렬하게 담으면서도 탄력을 받기 위해서 심플하고 명쾌한 메인 플롯 하나를 짜내는 데 있었을 것이다.
우선 이 영화의 아역배우로 주인공 역할을 하는 배우는 열악한 가정환경에 놓여있는 동생으로 나오는 애수(심하은)일 것이다.
애수는 유기견을 사랑하는데 안락사 위기에 빠지자, 애수의 조력자로는 언니가 나온다. 그런데 수많은 악인들이 만들어낸 유기견의 비참한 생활과 죽임을 당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연속해서 드러나지만 적대자들이 끝내 반성을 하고 징계를 당하는 액션이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은 영화가 시작하고 끝까지 거의 전체적인 비중이 없다. 적대자가 사라진 영화. 주인공의 장애물을 만들어내 고난에 빠트리는 역할을 하는 적대자는 사실 이 작품에서는 유형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무형적으로 표현되는 게 작품 의도인 것인가.
간간히 이 작품은 유기견 안락사 캐릭터가 나와 나는 왜 동물을 사랑하는데 반복해서 주사기로 동물을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인가!’라며 한탄하고 절망하는 장면으로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무엇이 옳고 타당한 것인가?>라는 물음표가 담긴 의문점을 동물을 사랑함으로써 가족에게 찾아오는 <행복(!)>이라는 느낌표로 밝은 감정을 치솟게 만든다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이지만, 끊임없이 반복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반려동물 잔혹사에 대한 대안 제시나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애수처럼 수많은 여리고 약한 어린 주인공으로 사는 이들은 사회에서는 상처를 계속 받는 점이 이어질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러한 냉혹한 세상과 이러한 죄의식 없는 어른인간들과, 학대받는 동물들 사이에 이 작품은 허전할 수밖에 없고 공허하다.
 
반려동물로 가족애를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
시놉시스는 애수는 엄마가 집을 나가고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빠에 반항하지만, 늘 밝은 친구들과 달리 주인공은 항상 우울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유기견을 발견하고, 유기견 또한 주인이 없는 터라 주인공과 유기견은 서로 의지하며 가깝게 산다.
그러 던 중, 안락사 위기에 처한 유기견을 구하려고 언니에게 애수는 도움을 요청하며 가족은 단결하고 화합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은 <또 하나의 사랑>은 방송용 단막극이 적합하다는 판단이 든다. 방송국 업계에서 협상테이블에 앉아, 무조건 충분히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반드시 보여 줄 드라마라고 외치고 행했으면 더욱 용감했고 박수쳐 주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영화할 때 한자어로 映畵비칠 영자에 그림 화자이다. 비치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스크린 상에 펼쳐지는 영상물을 말한다. 이는 그 만큼 큰 화면에 그림 같은 장면이 많이 나와야 영화소재로서 괜찮은 재료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추악하고 더러운 현실을 고발하는 아름답지 못한 장면이 줄줄이 나오는 저예산 영상물도 있을 수 있고 그림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 소재와 콘셉트로 성공하려면 이슈거리를 몰고 다니고 풍성한 입소문도 함께 가는 게 작품 만드는 사람으로서 갖는 목표일 것이다.
<또 하나의 사랑>에 대한 얘깃거리가 부족하니 영화의 사전적인 뜻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보고 싶었다.
과연 피와 살과 영혼을 가진 인간이 때때로 반려동물을 고깃덩어리로 생각 안하고 진정한 반려자로 내다보며 이 작품을 보면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을까?
혹시 이미 이러한 스토리를 알고 있을 법한 일반 대중적인 애견인 대상으로 애초부터 영화를 기획하지는 않았을까? 마치 세상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 없는 기독교 서적 책방이 기독교인들이 자주 가며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되는 것처럼 말이다.
반려동물을 통해 정말로 소중한 가족회복을 위해 의도되는 작품을 만들려면 어둠과 밝음. 비극과 코미디 사이에서 좀 더 각별한 고민과 뛰어난 재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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