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료한 엘리트 삶보다 신명나는 예술인생 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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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엘리트 삶보다 신명나는 예술인생 살 터”

-남윤주 수의사의 끼가 넘치는 생기가득한 삶 조명-
기사입력 2016.11.0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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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활동 사항 및 경력은?
- 연기 관련 활동사항이나 경력은 아직 없으며 음악 쪽 경력이 조금 있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취미로 인디밴드 활동을 하다 레이블 오너의 눈에 들어 2006년 수의학과 본과 4학년때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기타리스트+서브보컬이었어요. 인디레이블 수준의 작은 기획사였지만 투지가 엄청났죠.

다른 학생들은 책을 산더미같이 싸안고 다니면서 수의사 국가고시 준비를 할 때 저는 책가방 대신 기타를 메고 망사스타킹에 킬 힐 신고 교수님들께 가서 "오늘 엠비씨 가야하니까 공결증 끊어주세요" 라는 소릴 당당하게 지껄 여대서 그 시절의 수의과대학 안에서 나름 유명했습니다.

인디씬에서 먼저 데뷔를 하고 첫번째 정규앨범을 준비하는 도중에 국가고시를 봤고 하늘이 도와서 합격하고 나서는 맘놓고 음악만 했어요. 멤버들하고 회사 분들하고 다 같이 힘내다 보니까 Pentaport Rock Festival 이나 World DJ Festival 같은 대형 락페에서도 공연할 수 있었고, M-net 마담B의 음악살롱 빅뱅스페셜이나 M-super concert 같은 방송출연도 할 수 있었습니다. 보컬이랑 저는 OBS 생방송 뉴스퀴즈쇼에서 한동안 서브MC를 하기도 했었구요. 연기는 지금! 밤에 응급센터 수의사 일을 하면서 맹렬하게 공부중입니다. 주독야경인가.
 
-연기(가수)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이유?
- 음... 저는 예쁘지 않습니다. 사납게 생겼죠. 음악을 듣거나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소위 멍때리고 있을 때의 무표정은 그 박력(?)이 갑절로 치솟나 봅니다. 언젠가 나는 길거리에서 도를 아시냐며 접근하는 도쟁이들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너는 길거리를 걸어다닐 때 누구든 한마디라도 말을 걸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과 기세로 걸어다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군요. 보통 스모키가 애용되는 공연용 메이크업이 공격력을 배가시켜 줬습니다. 눈꼬리가 살짝 치솟은 편인데 "고양이" 같은 귀여운 별명 말고 "삵" 으로 표현되더군요. 아니면 독사라던가.

그런데 이렇게 사납고 잘생긴 얼굴이 오히려 무대에서는 존재감을 부풀려 줬습니다. 보컬이 메인이어야 할 무대에서 보컬보다 제가 더 눈에 띄는 현상이 발생했고 그걸 방지하고자 조명이 닿지 않는 구석에 처박혀서 기타를 치는 날도 있었습니다. 아이돌을 사랑하는 나이의 어린 여성 관객들에게도 인기가 좋았구요.

이때 영화 관련 쪽에서 그 존재감을 기특히 여겨 주셔서 배우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해주셨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기를 생각해보게 된 때였지요. 첫번째 기회였는데, 그때 어이쿠 감사합니다 하고 당장 시작했어야 하는데, 당시의 저는 오로지 음악에 미쳐 있었어서 그 제안을 연기를 하고 배우가 되어라- 라는게 아닌 연예인이 되라는 걸로 잘못 알아듣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어렸고 어리석었고 설익은 패기가 넘쳐나고 있었던지라, "연예인" 이라는 직업 명칭에 대한 오해와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진실성 없이 가볍고 허세만 가득하고 뭐 그렇다는. 그바람에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말았어요. "전 연예인 안할건데요. 전 음악할건데요" 이따위로 시건방을 떨면서요. 그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세번을 더 찾아와 주셨는데 그때마다 저런 망발을 지껄여댔습니다. 후에 저는, 저런 실수를 저지른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됩니다.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생각하게 된 건 한참 후입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동안 계속 뇌주름 사이에 껴들어가 침잠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저런 문제로 기획사에서 나오게 되면서 실컷 신나게 놀아 봤으니 이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자고 생각했었어요. 원래 꿈은 의학 쪽 연구자였거든요. 곧장 대학원에 진학해서 어머니 평생 소원이시던 좋은 대학 배지를 달아드리고는 면역세포를 이용한 암의 치료법을 연구하려고 했는데, 몇년간의 음악활동이 사람의 기질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건지 아니면 잠들어 있던 기질을 흔들어 깨워 놓은 건지 하루종일 갇힌 듯한 실험실의 쳇바퀴 생활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 연구를 해내면 수천만명을 살릴 거라는 명분도 자부심도 아무런 모티베이션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2년이 지날 때쯤 우울증과 무기력증, 자기혐오, 대인기피 등 각종 정신적인 문제들이 발생했고 새벽 두시에 실험을 마치고 캠퍼스를 나서면서 차들이 가장 방심하고 속도를 높이는 구간을 골라 그곳의 차도 한복판을 걷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 다음날, 곧바로 대학원 과정을 중퇴하고 임상수의사가 되었습니다. 확실히 임상수의사는 사람도 환축도 많이 만나고, 질병과 치료에 대해서 보호자들에게 하루종일 떠들어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하고, 실험실 생활보다는 훨씬 더 액티브했으므로 처음에는 그래도 어느정도 해소가 되더군요.

그렇지만 한번 실패한 공격을 두번째 시도할 때는 훨씬 더 치밀하게 준비해서 훨씬 더 큰 스케일로 쳐들어오는 법. 우울증은 그전과 비교불가하도록 심하게 들이닥쳤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대인기피와 공황장애가 생겨났으며, 이러한 정신적 불안정은 없던 신체적 질병을 만들어냈습니다. 애초에 즐겁지 않은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가난도 외로움도 죽음도 아니고 즐거움이나 재미가 하나도 없는 삶을 사는 것, 그래서 전혀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배부른 소리 한다고 욕했습니다. 니가 뭐가 부족해서 투정이냐고. 외로워지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점점 살기가 싫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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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쯤엔 혈관이 됐든 기도가 됐든 몸 어딘가가 꽉 막혀서 아무리 폐가 터지도록 숨을 들이마셔도 몸 구석구석까지 산소가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거든요.
원인은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데 발산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죠. 목을 매려던 노끈을 한손에 쥐고 멍하니 허공만 노려보고 있다가 TV에 눈이 갔는데 거기서 남녀가 싸우고 있었어요. 무슨 외국 영화의 한 장면이었는데 제목은 기억이 안나고, 하여간에 진짜 신나게 싸우고 있었죠. 전혀 아름답지 않은 장면이었어요.

 잡동사니 다 날라다니고 뭐 듣도 보도 못한 저질 욕들이 난무하고 옆에서 애는 빽빽 울고 머리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 악을 쓰는데, 그걸 보면서 "진짜 신나겠다 쟤는." 하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저러고 나면 진짜 삼십년 묵은 무언가도 뻥 뚫리겠지. 잠 잘오겠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어요. 볼때마다 영화 속 상황을 현실로 끌어당겨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는 새로운 인물이 되어서 기존의 인물들이랑 부대끼고 울고 웃고 화내고 소리지르고 그랬습니다. 그럼 조금 무언가가 해소되는 느낌이었거든요. 재밌었구요. 망상 속에서이긴 하지만 정말 여러 사람이 되어 봤어요.

그런데 점점 보는 걸로는 만족이 안되기 시작하는건지, 영화가 끝나면 뭐랄까, 영화속 인물들은 홱 등을 돌려서 자기들끼리 집에 문닫고 들어가버리고 나만 문밖에 뎅그러니 남은 듯한 공허한 느낌이 드는 거에요. 제가 점점 미친 여자 같았어요. 그러면서 점차 자연스럽고 당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배우가 되어야겠다. 배우가 되면 이게 미친 게 아니잖아.

아니 미친거라도 해도 배우가 되면 실컷 미쳐도 되는거잖아. 즐겁지 않은 엘리트보다 매일이 즐거운 미친 여자가 되어야지. 나이 서른 넷에 나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자 직업도 가지고 있고 이제 슬슬 결혼해서 애기낳고 안정을 꿈꿀 나이에 배우를 꿈꾼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많이들 미쳤다고 하는데, 그러면 저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응 맞아."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이 긴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을 수가 없어서 그냥 한마디만 합니다. "음....나는 평생 수의사로만 살다 죽는게 너무 억울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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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가 된 계기는?
-전 어릴 때부터 생명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부터 꾸준히 흔들리지 않았던 꿈이에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오히려 책을 읽고 상상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딱히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었습니다. 근데 지금 누구보다도 맹렬하게 진짜 배우가 되려고 하고 있는 걸 보면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거나 사람은 다 팔자가 있다는 말이 다 맞는 것 같아요. 수능을 망치는 바람에 S대를 못가고 K대 수의학과에 갔고, 원래는 연구직으로 진로를 정하고 유전자 분야를 공부하려고 했는데 수의사라는 라이센스를 갖고 있으면 임상실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구요. 국가고시준비 공부를 17일 만에 해내고 겨우 합격해서 지금 현재는 야간 응급센터에서 응급과장 수의사로 일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배우로서 맡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무엇인가?
- 허락된다면, 그리고 능력이 된다면 타락의 끝까지 간 여자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금전이나 성적인 의미의 타락을 의미하는 건 아니구요. 자의였든 타의였든, 가장 추하고 더럽고 위험하고 비열한 바닥까지 굴러떨어져서 뒹굴어야 했던 결과 상대방이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악밖에 남지 않았거나, 그 지경을 넘어서서 이제 어떤 것에도 자극받지 않을 지경까지 간 사람이요.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렵긴 하지만 그래서 더 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배역입니다. 이왕이면 비열한 가해자에게 더 비열한 방식으로 복수에 성공하는 스토리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아요 하하.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모든 매체는 관객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이 가능하게 한다는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도 일종의 대리만족이겠지만, 저는 그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대리만족이 가능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막 울분이 치솟으면,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붙잡고 마구 두들겨패거나 찔러죽이거나 하다못해 욕이라도 실컷 퍼붓는 상상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건데, 그걸 진짜로 실행에 옮길 수가 없잖아요. 그럴 때 막 다 때려부수는 영화를 보면 속이 좀 시원해지지 않습니까? 매체를 통한 대리만족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시원시원하게 해낼 줄 아는 배우가 되고싶습니다. 그렇다고 맨날 살인마 역할만 하고 싶다는 게 아니고, 그렇게 관객의 숨겨놓은 본능적인 가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는 배우. 난 저 배우를 보면 속이 시원해져 라던가, 난 저 배우를 보면 어쩐지 눈물이 나...라던가. 그렇게 다양한 본성들을 건드리려면 다양한 모습을 가져야 하겠지요. 그것이 첫번째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팔색조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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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에 있어서 자신과의 약속이나 각오?
- 지치지 않는 것. 사회적 통념이나 시선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 "나"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이기적이 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나이쯤에는 으레 이러이러하니 너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사회적 통과의례 따위를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연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유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껍데기만 남았다가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살아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아무것도 몰라서 갓난아이보다도 태아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첫 대사를 뱉었을 때, 그동안 들이마시지도 내쉬지도 못해서 어중간한 데에 고여 터지기 직전이던 묵은 호흡들이 한순간에 폭발하듯 내뱉어지고 그자리에 싸르르한 새 공기가 밀려들어오는 것 같았던, 마치 첫 호흡같던 그 순간을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수의사라는 연기 외 직업이 있다고 안심하거나 나태해지지도, 연기만을 오래 해오지 않았다거나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주눅들지도 않겠습니다. 그냥 늘 살아서 움직이겠습니다.
 
-인생의 최종적인 꿈은 무엇인가?
- 할머니가 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신문에 "향년 XX세 여배우 故 누구누구 씨, 영화 OOOO 촬영 중 별세" 이런 헤드라인으로 뉴스들을 장식하고 떠날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배우가 되는 겁니다. 유언은 "아아 재미있었다. 잘 놀다 갑니다" 정도로. 아 진짜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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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구스모안이라는 밴드에서 작곡과 편곡이 가능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싱글 앨범 두 작품을 발표했고 앞으로 단독콘서트 준비이다. 게다가 그녀는 수의사로 활동하면서 개를 학대해서 다쳐서 오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때 그녀는 개를 때렸든 굶겼든 방치했든 그런 성의없는 보호자에게 친절하게 못한 열혈 의료인이다. 애견신문 독자들에게 수의사로 전해주고 싶은 얘기도 동물병원에 들어 온 동물이 질병인 뭔지 검사하고 원인 파악을 하다보면 건강보험이 적용이 안되어 그 비용이 엄청 많아지고 수의사는 곤란해진다고 한다. 실제 그녀는 응급과장으로서 긴급하고 빠르게 일 처리를 하는 게 직업병이라 인터뷰 할 때도 말이 빨랐다.
수의사로 개업하고 싶지도 않고 돈 버는 게 인생의 최고의 목표도 아닌, 그녀가 지금 수의사로서 일을 즐기고 예술을 사랑하면서 예술활동을 잘 하길 적극 기대해 본다. 문상철 기자 77msc@ha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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