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들이 오가는 광화문 사거리에 “동물실험을 반대한다!”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5월 3일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 1시, 한국동물보호연합은 ‘488만 동물들의 비명과 죽음, 동물실험 천국을 규탄하는 퍼포먼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 4월 농림축산식품검역본부의 발표에 의하면, 2021년 국내에서 동물실험으로 희생된 동물이 488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대 수치로, 2017년 208만여 마리를 기록한 것과 비교했을 때 5년 만에 약 58.3%나 증가한 것이다.
동물실험의 대상으로 사용되는 동물은 쥐와 같은 설치류, 토끼, 오랑우탄, 침팬지 등이며 이에는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비글 등의 개와 고양이도 들어간다.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반려동물이 고통 속에 실험체로 생명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측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동물실험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에 따라 가장 낮은 A등급부터 가장 심한 E등급까지 5단계로 나뉜다. 특히, E등급의 경우, 마취제나 진통제 등을 투입하지 않은 상태로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고 이를 관찰하는 단계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측은 “E등급의 동물실험은 살아있는 동물의 다리를 절단하거나 배를 가르고, 피부를 찢거나 독성 약물을 주입하는 등 동물에게 심각한 고통과 통증을 주지만, 연구의 순수성 확보라는 미명 아래 동물의 고통과 통증을 완화시키려는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잔인하고 끔찍한 E등급의 동물실험은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동물보호연합 측은 “국내 동물실험의 40% 가량이 ‘고통 E등급’ 동물실험이고, 중증도 이상의 고통 억압을 주는 D등급 실험 역시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며 국내 동물실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021년 국내에서는 D등급 동물실험 대상이 약 160만 마리, E등급 동물실험 대상이 약 200만 마리를 기록했다. E등급 동물실험이 약 5% 내외이고, D등급까지 합해도 20% 내외를 기록하는 미국 및 유럽연합과 비교했을 때 국내 동물실험의 수치가 내포하는 심각함은 뚜렷해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측은 “동물실험은 과학과 윤리가 수레의 양바퀴처럼 함께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E등급 동물실험은 과학만 있고 윤리는 전혀 없다”며 “실험동물들에게 극단적인 고통과 통증을 유발하는 E등급 동물실험을 금지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했다.
이어 “동물대체시험법으로 동물실험을 대체하거나, 동물의 고통이나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수의학적 조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측은 ‘동물실험은 비과학적’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이들은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은 1.16%에 불과하고, 동물실험의 결과가 인간 임상실험에 나타날 확률은 5~10%에 불과하다”며 “동물실험을 통과한 신약의 부작용으로 매년 약 10만 명이상이 사망하는 미국”을 그 예로 들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동물실험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동물실험을 점차 줄여 가는데 유난히 우리나라만 실험동물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 매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는 대한민국이 ‘동물실험 지상주의’, ‘동물실험 제일주의’로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 상태면 동물복지를 보장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동물실험을 없애고 비윤리적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비거니즘(Veganism, 동물에 대한 모든 착취와 학대를 반대하는 삶의 방식이자 사상)카페 ‘패밀리앤프렌즈’를 운영하며 개인활동가로 현장에 함께한 김하원 대표는 “비거니즘은 아직 좀 먼 이야기 같아 먼저 개식용 금지나 동물실험 금지 등의 활동부터 차근차근 열심히 해나가고 있다”며 기자회견에 참석하게 된 경위를 밝혔다.
그는 “쉽게 보이지 않아 동물실험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사람들의 피부에 별로 와 닿지 않는 것 같다”며 “실제로 자료나 영상을 보면 너무 끔찍해 보기 힘든 고통이다. 모든 감정을 느끼는 동물들에게 이런 잔인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다들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며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은 이원복 대표가 동물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끝났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사람, 지인들과 웃고 떠들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 등 수많은 이들이 현장 앞을 지났다. 이들은 때로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마치 외면하듯 눈길조차 주지 않기도 했다. 실험으로 고통 받는 동물들을 외면할 수 없어 거리로 나선 이들, 이들의 외침으로 실험동물들의 고통은 줄어들 수 있을까? 이들이 켜는 작은 촛불 하나가 큰 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